Ⅰ. 서론 – 은사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를 잘하시고,
어떤 분은 찬양을 잘하시고,
어떤 분은 위로의 말을 참 잘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인 고린도전서 14장 26–33절은
한 가지를 분명히 말합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6절)
은사는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높아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라고,
서로를 살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Ⅱ. 본론
1. 기(起) – 은사가 많았던 교회
옛날에 아주 열심 있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은사가 참 많았습니다.
방언하는 사람도 많고,
예언하는 사람도 많고,
찬양도 뜨겁게 불렀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고린도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배 시간에 서로 먼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하고,
누가 말하는지도 모르고,
듣는 사람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은사는 많았는데,
질서가 없었습니다.
열심은 있었는데,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26절을 보니 이렇게 말합니다.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문제는 “각각”이었습니다.
“나도 있다.”
“나도 말하겠다.”
그런데 교회는 “나”의 자리가 아니라 “우리”의 자리입니다.
2. 승(承) – 바울의 가르침
그래서 바울은 차분히 가르칩니다. 27절 28절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29절과 33절이 답입니다.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말은
집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집과 같습니다.
벽돌 하나하나가 성도입니다.
벽돌이 서로 부딪히면 집이 무너지지만,
질서 있게 쌓이면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은사는 벽돌을 쌓는 도구입니다.
망치로 서로를 때리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세우라고 준 것입니다.
3. 전(轉) – 우리 교회의 이야기
어느 교회에 기도를 참 크게 하시는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열심이 얼마나 있는지,
기도하면 교회가 울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내가 기도 소리가 작아서 하나님이 안 들으시면 어떡하나…”
그렇게 위축이 되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하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사님, 그 기도 참 귀합니다.
그런데 옆 사람도 함께 아멘 할 수 있도록
조금만 천천히 해 주세요.”
그 말에 권사님이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기도가 더 은혜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사가 ‘나를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찬양할 때, 말할 때,
이 질문을 해 보십시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가?”
“옆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가?”
4. 결(結) – 우리의 결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사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기도의 은사, 찬양의 은사, 섬김의 은사, 위로의 은사,
이 모든 것이 교회에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늘 고린도전서 14장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은사가 아무리 많아도
질서가 없으면 덕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상처가 됩니다.
겸손이 없으면 자랑이 됩니다.
하나님은 소란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33절에 말씀합니다.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화평’이라는 말은
싸움이 없는 상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편안한 상태,
서로가 세워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첫째, 나는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겠습니다.
내가 하는 이 말이
사람을 세우는 말인가, 아니면 내 감정을 쏟아내는 말인가?
내가 하는 기도가
함께 아멘 할 수 있는 기도인가, 아니면 나 혼자만의 기도인가?
한 번 더 생각하면
말이 부드러워집니다.
기도가 따뜻해집니다.
표정이 달라집니다.
둘째, 나는 나보다 교회를 먼저 생각하겠습니다.
교회는 내 집이 아닙니다.
주님의 집입니다.
내가 조금 양보하면 교회가 편안해집니다.
내가 조금 낮아지면 다른 사람이 숨을 쉽니다.
“왜 나를 먼저 안 세워주느냐”
이 마음을 내려놓고
“교회가 세워지면 된다.”
이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셋째, 나는 은사를 자랑이 아니라 섬김으로 쓰겠습니다.
은사는 내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선물입니다.
선물은 자랑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
나누라고 준 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잘하면 더 낮은 자리에서 섬기겠습니다.
내가 경험이 많으면 더 부드럽게 도와주겠습니다.
내가 오래 믿었으면 더 많이 품어 주겠습니다.
이것이 은사를 하나님 방식으로 쓰는 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은사는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방식으로 써야 합니다.
하나님 방식은
질서입니다. 사랑입니다. 겸손입니다. 화평입니다.
오늘 이 시간,
조용히 마음속으로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제가 가진 은사가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저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지 않게 하소서.
화평의 하나님을 닮게 하소서.”
그럴 때
우리 교회는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더 은혜로워질 것입니다.
은사가 덕이 되는 교회,
서로를 세워주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Ⅲ. 결론 – 한 몸을 세운 바나바의 모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속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마무리해 보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바나바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사도행전 4장과 9장, 11장에 나옵니다.
1.
초대교회가 막 시작되었을 때였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바나바는 자기 밭을 팔아서
사도들 발 앞에 두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자랑하려고 한 일도 아닙니다.
교회가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은사가 무엇입니까?
바나바의 은사는 “위로”였습니다.
이름 뜻 자체가 “위로의 아들”입니다.
그는 말로만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삶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2.
또 한 사건이 있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이 정말 변한 게 맞나?”
모두가 의심했습니다.
그때 바나바가 나섰습니다.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 앞에 가서
“이 사람은 정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증언해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사울은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훗날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바나바가 없었다면
사울은 교회 안에 들어오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바나바는 자신이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세워주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사는 꼭 큰 능력이 아닙니다.
병을 고치는 것만 은사가 아닙니다.
방언만 은사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믿어 주는 것,
누군가를 품어 주는 것,
조용히 헌신하는 것,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은사입니다.
바나바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앞에 서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든든하게 세운 사람입니다.
4.
우리 교회가 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바나바 같은 사람이 많은 교회,
서로를 세워주는 교회,
질서 가운데 예배하는 교회,
은사가 덕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저를 바나바처럼 사용해 주옵소서.
제 은사가 사람을 살리게 하소서.
저를 낮추고 교회를 높이게 하소서.
화평의 하나님을 닮게 하소서.”
그럴 때
우리 교회는 조용하지만 강한 교회,
작지만 든든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덕을 세우는 교회가 되어 함께 은혜받는 교회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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