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이 말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말하는 사랑과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은 어떻습니까?
기분이 좋을 때는 사랑하지만, 마음이 상하면 멀어집니다.
내게 유익이 있을 때는 붙어 있지만, 손해가 되면 돌아섭니다.
그래서 세상의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다릅니다.
성경의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기분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해서 하는 사랑입니다.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어주기로 선택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이란 이런 감정이다”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믿음이 있어 보여도 헛되고,
사랑이 있으면 평범한 삶도 능력이 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아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믿음도 중요하고, 소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위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Ⅱ. 본론
첫째,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1–3절)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아주 이상한 말을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대단한 신앙” 같은 것들을 하나씩 꺼내 놓고,
그것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먼저 1절입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바울은 일부러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듭니다.
“사람의 말”뿐 아니라 “천사의 말”입니다.
이 말은 가장 영적인 언어, 가장 은혜로운 말을 뜻합니다.
오늘로 말하면 이런 겁니다.
기도도 잘하고, 말씀도 유창하고, 신앙적인 말이 입에 술술 나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라는 것입니다.
소리 나는 구리, 울리는 꽹과리—크긴 크지만,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소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은 많은데 따뜻함이 없는 신앙,
진리는 말하는데 사람은 아프게 하는 신앙, 그것이 바로 사랑 없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2절은 더 놀랍습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바울은 여기서 “조금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덜 훌륭하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 우리가 늘 부러워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 믿음이 아무리 커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텅 빈 껍데기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목적은 내가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절입니다.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전 재산을 나누고, 자기 몸까지 내어주는 희생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그것조차도 사랑이 아니라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희생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사랑은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희생, 인정받기 위한 봉사,
의무감으로 하는 섬김은 하나님 앞에서는 사랑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 절을 통해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신앙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결국 자기 자신도 메마르게 만듭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의 신앙에는 사랑이 있느냐?”
“너의 말과 행동 뒤에 사랑이 있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둘째, 사랑으로 살기로 결단하라. (4–13절)
여러분, 이제 바울은 더 이상 사랑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1)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삶의 태도입니다. 먼저 4절입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바울은 “사랑은 설렌다”, “사랑은 행복하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두 참는 것, 낮아지는 것, 절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은 기분이 좋을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힘들 때 진짜 모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는 사랑, 상대가 바뀌지 않아도 기다려 주는 사랑,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낮아지는 사랑—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5절로 가면 더 현실적입니다.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 말씀은 우리 삶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같습니다.
사랑은 말투에서 드러나고, 사랑은 태도에서 드러나고, 사랑은 판단하는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사랑으로 말하고 있느냐?”
“너는 사랑으로 판단하고 있느냐?”
“너는 사랑으로 참고 있느냐?”
2) 사랑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7절입니다.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 말씀은 사랑의 절정입니다.
사랑은 한 번 참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어 주는 것, 기대해 주는 것, 소망을 놓지 않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가야 합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3)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가치입니다. 8절에서 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은사는 때가 되면 멈춥니다. 직분도, 역할도 언젠가는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13절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믿음도 중요합니다.
소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보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을 가장 닮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Ⅲ.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지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결단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미 사랑이 무엇인지 들었습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내가 이 사랑으로 살 것인가?”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는 사랑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조건 없이 용서받았고, 끝까지 기다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결단하기를 원합니다.
말로만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이기는 신앙이 아니라, 살리는 신앙으로 살겠습니다.
옳음을 주장하기보다, 사랑을 선택하겠습니다.
판단의 손을 내리기보다, 품는 팔을 벌리겠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프로그램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가정도, 관계도, 신앙도 사랑이 있을 때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 이 수요기도회가 한 편의 설교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이 내일 우리의 말투가 되고, 이번 주 우리의 태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 마음으로 함께 고백합시다.
“주님, 내가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게 하소서.
내가 용서받은 만큼 용서하게 하소서.
상처 주는 신앙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신앙으로 살게 하소서.
그 중의 제일인 사랑으로 오늘도, 이번 주도, 내 삶을 채우게 하소서.”
이 결단 위에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게 하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드러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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