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17–34절, 제목: 연합과 교제에 대하여

신북중앙교회 2026. 2. 24. 19:24

1. 서론: 연합과 교제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주제는연합과 교제입니다.

연합이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여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여러 가닥의 실이 모여 한 줄의 튼튼한 줄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교제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마음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입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식구가 둘러앉아 같이 먹는 것처럼

서로 얼굴을 보고, 말도 나누고, 서로를 생각하는 것이 교제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르지만,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연합해야 하고, 서로 사랑으로 교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고린도 교회는 이 연합과 교제가 깨어지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성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가 나뉘고,

먼저 온 사람은 배불리 먹고, 늦게 온 사람은 굶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보고

이것은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책망합니다.

2. 본론

처음 모습: 함께 모인 한 식탁

예루살렘 교회의 어느 주일 저녁을 한 번 그려봅니다.

해가 기울고,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 둘 한 집으로 모여듭니다.

옷이 깨끗한 사람도 있고, 일하다 먼지 묻은 옷을 입은 사람도 있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 농사를 짓는 사람, 주인의 심부름을 마치고 달려온 종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신분도, 형편도, 가진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형제요, 자매였습니다.

서로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이하고,

“오늘도 주님이 지켜 주셨네하며 인사를 나눕니다.

방 한가운데에 작은 상이 놓이고, 그 위에 빵과 포도주가 놓입니다.

사도 한 사람이 조용히 일어나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빵을 나누어 받으며 마치 주님의 손에서 직접 받는 것처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습니다.

이어서 잔을 들고 말합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그 순간, 부자도 고개를 숙이고, 가난한 사람도 눈물을 훔치며,

종도 주인도 똑같이 감사의 마음으로 잔을 받습니다.

누군가는 병으로 고생하다가 주님의 은혜로 회복된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지켜 주신 일을 간증합니다.

어떤 이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울고, 어떤 이는 새로 태어난 아이를 생각하며 웃습니다.

그때 다른 성도들이 다가와 어깨를 감싸 안고 함께 울어 주고,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해 줍니다.

음식도 나눕니다. 많이 가져온 사람,

적게 가져온 사람, 모두가 함께 먹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고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주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같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한 몸입니다.”

그 자리에는 차별도 없고, 자랑도 없고, 서로를 무시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오직 감사와 사랑, 그리고주님 안에서 하나라는 기쁨만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처음 모습이었습니다.

한 몸으로 모이고, 한 식탁에 둘러앉고, 한 사랑으로 서로를 품는 모습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기다: 갈라진 식탁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모습은 처음 교회의 모습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들도 모일 때마다 성찬을 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다 같은 예배 같았고, 다 같은 성찬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에는 형편이 좋은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장사가 잘 되는 사람, 넉넉한 집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일찍 예배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먼저 펴 놓고, 자기들끼리 먼저 먹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가 불러 더 이상 못 먹을 정도였고,

어떤 사람은 포도주를 많이 마셔 얼굴이 붉어지고 말까지 흐려졌습니다.

그런데 같은 교회 안에는 종이나 일꾼처럼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다가 해가 져서야 겨우 예배 자리에 올 수 있는 가난한 성도들이었습니다.

배도 고프고, 몸도 지친 채로 성찬 자리에 도착했는데,

이미 상 위에는 남은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빵은 다 떨어지고, 잔도 거의 비어 있었습니다.

같은 주님의 식탁인데, 어떤 사람은 배가 불러 기대어 있고,

어떤 사람은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마을 잔치를 벌였는데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고기와 떡을 실컷 먹고 웃고 떠드는데, 뒤늦게 온 가난한 이들은

빈 그릇만 바라보며 “우리는 이 잔치에 끼지도 못하는구나

하고 마음이 서늘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이 모습을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성찬이 아니다. 너희가 모이면 모일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말했을까요?

그들은 떡과 잔은 들고 있었지만, 주님의 마음은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높은 사람만 위해 몸을 찢으신 분이 아닙니다. 부자만 위해 피를 흘리신 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길가의 거지, 병든 사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던 죄인, 힘없이 울던 과부와 아이들까지

모두를 위해 같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누구도 빼놓지 않고 똑같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주님의 그 사랑을 잊어버렸습니다.

교회 안에서 다시 세상처럼 사람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 적게 가진 사람, 시간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을 나누고,

서로를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성찬 자리가 사랑의 자리가 아니라 차별의 자리가 되었고,

연합의 자리가 아니라 상처의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주님의 몸을 분별하라고 외칩니다.

떡만 보지 말고, 잔만 보지 말고, 그 옆에 앉아 있는 형제자매가

주님의 피로 산 한 몸임을 보라는 것입니다.

연합과 교제는 같이 모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기다리고, 같이 나누고, 같이 사랑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눈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빛: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예수님의 마지막 밤으로 눈을 돌리게 합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한 방에 둘러앉아 마지막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곧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사랑의 제자였지만, 예수님이 잡히시자 멀리서만 따라가던 두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 가룟 유다도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누가 도망칠지, 누가 부인할지, 누가 배신할지 다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무도 쫓아내지 않으셨습니다.

“너는 믿음이 약하니까 나가라.”

“너는 곧 나를 버릴 사람이니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향해 떡을 드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는 내 몸이다.”

베드로를 위하여도, 요한을 위하여도, 심지어 가룟 유다를 위하여도 찢기실 몸이었습니다.

또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피다.”

그 피는 의로운 사람만을 위한 피가 아니라, 넘어질 사람, 도망칠 사람, 배신할 사람까지

모두를 위한 피였습니다.

주님의 식탁에는 차별이 없었습니다.

공로를 따지지 않았고, 자격을 재지 않았고, 행동의 점수를 매기지 않았습니다.

오직 은혜로 나누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 장면을 다시 들려주며 말합니다.

너희는 주님의 몸을 분별하라.”

이 말은 떡이 거룩하니 조심하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성찬 그릇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만도 아닙니다.

더 중요한 뜻은 이것입니다.

너희 옆에 앉아 있는 그 형제, 그 자매가 바로 주님의 몸으로 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라.”

그 사람도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사람, 나도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사람,

우리는 모두 십자가 아래에서 똑같이 용서받은 사람,

똑같이 사랑받은 사람, 그래서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주님의 몸이 나를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이 옆에 있는 형제자매도 같은 피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한 몸, 한 가족입니다.”

이 십자가를 바라볼 때, 사람을 나눌 수 없고, 형편으로 차별할 수 없고,

먼저 온 사람, 늦게 온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었고,

모든 사람이 용서받았고, 모든 사람이 사랑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눈물로 외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아라. 주님의 몸을 보아라. 그리고 서로를 주님의 몸처럼 귀히 여기라.”

 

결론: 다시 하나 되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혼자 신앙생활 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믿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는 곳이다.”

서로 도우며 일하면 땀은 나도 마음은 즐겁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혼자 가면 지치지만, 함께 가면 견딜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위해 같이 기도하고, 어려운 가정을 위해

같이 마음을 모으고, 기쁠 때는 같이 감사하는 것, 이것이 연합이고 교제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서로 기다리라.”

먼저 온 사람이 늦게 온 사람을 기다리고,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돌아보고,

형편 좋은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품으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식탁의 모습이고, 주님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3.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이가 많아도, 형편이 달라도, 건강이 달라도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같이 피 흘리셨습니다.

같이 살리셨습니다. 같이 천국으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서로 미워하지 말고, 서로 서운해하지 말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위해 기도하며,

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연합의 교회, 사랑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몸을 귀히 여기듯, 서로를 귀히 여기는 복된 교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