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 제목이 조금 낯설지요. “머리에 쓰는 것”이라 하니까,
“요즘 세상에 누가 머리에 뭘 쓴다는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 모자를 쓰는 것도 아니고, 천을 머리에 두르는 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이 말씀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옛날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겉모양만 보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늘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오늘 이 말씀을 쓴 이유도 “여자는 이렇게 해라, 남자는 저렇게 해라”
이런 규칙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배를 자기 편한 대로 드리고 있구나.”
“하나님보다 자기가 앞서고 있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은혜도 많이 받았고,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다 보니 이런 생각이 생겼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인이야.” “마음만 있으면 되지, 형식이 뭐가 중요해?”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자유 때문에 예배의 질서가 무너지고,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머리에 쓰는 것’이라는 눈에 보이는 이야기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예배할 때, 정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는가?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두고 있는가?
자유 속에서도 겸손을 잃지 않고 있는가? 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모자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 이야기이고,
천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의 태도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쓰고 예배하고 있는가?”
겉모습이 아니라 우리 마음 위에 무엇을 얹고 살아가는가?
이것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바울이 이 말씀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린도 교회는 은혜도 많았고, 문제도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예배는 드리는데,
자기 생각대로, 자기 방식대로 드렸습니다.
“나는 자유를 얻었다.”
“나는 은혜를 받았다.”
그러면서 질서와 배려가 무너졌습니다.
그 당시 교회에서는 여인이 예배 중에 머리에 쓰는 것이 겸손과 존중의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인이잖아요.”
“이런 건 필요 없지 않나요?”
바울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예배는 자유롭게 드리되,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는 귀하게 여겨야 한다.”
2. 머리에 쓰는 것은 천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머리에 천을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마음
내가 중심이 아니라는 고백
공동체를 배려하는 태도
예배는 “내가 편한 대로 드리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시간”입니다.
머리에 쓰는 것은
“나는 하나님 아래에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라는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3. 예화.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아주 유명한 축구 선수가 한 명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다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겁니다.
바로 손흥민 선수입니다.
손흥민 선수는 세계에서 제일 큰 무대에서 뛰는 사람입니다.
잘 뛰고, 실력도 좋고,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이 다 알아보는 선수입니다.
그런데 손흥민 선수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경기 전에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락커룸에서
잠깐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인데 왜 아직도 그런 걸 합니까?”
그때 손흥민 선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실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잘 뛰는 날도 있고, 마음대로 안 되는 날도 있지만,
그때마다 나를 붙들어 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걸 기억하려고 고개를 숙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 모습이 바로 오늘 말씀에서 말하는 ‘머리에 쓰는 것’입니다.
손흥민 선수는 머리에 모자를 쓰고 뛰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마음 위에는 겸손이라는 천이 씌워져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높아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질서.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혼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질서는 누가 높고 낮다는 말이 아닙니다.
질서는 서로를 살리는 약속입니다.
부모가 부모답게 서고
자녀가 자녀답게 서고
남편이 남편답게
아내가 아내답게
성도가 성도답게
각자 자리를 지킬 때 공동체가 평안해집니다.
머리에 쓰는 것은
“내 자리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합니다”
라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5.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머리에 천을 쓰고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예배 자리에서 내 마음은 어떠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까?
내 주장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두고 있습니까?
혹시 이렇게 말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요즘 세상이 그런데요.”
“다들 그렇게 사는데요.”
바울은 말합니다.
예배는 세상 따라 드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6. 결론 – 하나님 앞에 쓰는 한 가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꼭 써야 할 것은 모자도 아니고, 천도 아닙니다.
겸손입니다.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마음입니다.
예배 시간에,
기도할 때,
삶의 자리에서 우리가 조용히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오늘도 제 머리 위에는 주님의 은혜가 있고,
제 마음 위에는 겸손을 쓰게 하소서.”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님의 삶 위에
하나님의 평안과 은혜가 날마다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17–34절, 제목: 연합과 교제에 대하여 (1) | 2026.02.24 |
|---|---|
|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11–16절, 제목: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0) | 2026.02.22 |
|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1절, 제목: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0) | 2026.02.21 |
|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23–33절, 제목: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0) | 2026.02.21 |
|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14–22절, 제목: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0) | 2026.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