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11–16절, 제목: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신북중앙교회 2026. 2. 22. 13:37

1. 도입

몇 해 전, 국민 가수로 불리는 나훈아 선생님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기자가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래는 소리만 크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박자가 있고, 쉼이 있고,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맞아야

듣는 사람이 편안하고 감동을 받습니다.”

아무리 목소리가 좋아도

자기 마음대로 빨리 부르고, 자기 멋대로 늘이고 줄이면

노래가 아니라 소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래에도 박자와 순서가 있듯이

우리 삶과 신앙과 예배에도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2. 본론 · · ·

① 기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말하면서 아주 중요한 한마디를 합니다.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은 누가 더 높고, 누가 더 낮으냐를 따지는 말씀이 아닙니다.

힘이 세냐, 지위가 높으냐, 역할이 크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입니다.

예전에 시골에서 논농사 지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내기를 할 때, 누군가는 모를 심고

누군가는 물꼬를 트고

누군가는 논두렁을 다집니다.

모를 심는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까?

물 대는 사람이 더 중요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농사는 안 됩니다.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

모두가 필요하고, 모두가 귀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남자와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치의 차이가 아니라, 역할의 질서입니다.

서로 없이 혼자 설 수 없는 존재,

서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의 몸에서 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창조의 처음부터 질서를 세우신 분이십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하늘과 땅을 나누시고,

밤과 낮을 나누시고,

때와 계절을 정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

어른의 자리, 자녀의 자리,

목자의 자리, 성도의 자리,

각 사람에게 맡기신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가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케스트라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휘자가 있고, 바이올린이 있고,

플루트가 있고, 북을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이올린이내가 제일 앞에 있으니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면

음악이 깨집니다.

북이내 소리가 크니 내가 주인이다라고 말해도

음악은 엉망이 됩니다.

각자가 자기 자리를 지킬 때

비로소 하나의 아름다운 찬양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내가 서야 할 자리를 알고, 하나님이 맡기신 역할을 알고,

그 자리에서 겸손히 순종할 때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살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② 승왜 질서를 무너뜨리는가?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많았고, 열심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유내 뜻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예배드리고 싶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바울은 묻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가?

교회를 세우는가?

주님의 몸 된 공동체에 덕이 되는가?”

그래서 말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③ 전판단의 기준

이 판단은 세상의 기준이 아닙니다.

유행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고, 개인의 취향도 아닙니다.

판단의 기준은 오직 하나,

주 안에서입니다.

주님의 질서 안에서,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가, 무너뜨리는가?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절제하는 능력입니다.

 

④ 결스스로 판단하라

바울은 마지막에 말합니다.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교회는 내 취향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묻는 사람입니다.

“주님, 이 선택이 주님의 마음에 합당합니까?”

“이 말이, 이 태도가, 이 결정이 교회를 살립니까?”

이렇게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는 칼을 들고도 멈춥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느니라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정치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죽이는 것이 맞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감정보다, 자기 권리보다, 자기 억울함보다

하나님의 질서를 먼저 판단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인생의 수많은 순간 앞에 서 있습니다.

말 한마디를 하기 전에,

결정을 내리기 전에,

분노를 터뜨리기 전에,

관계를 끊기 전에,

성도 여러분, 오늘도 바울의 음성이 우리 귀에 들려옵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그러나 그 판단은 내 생각으로, 내 감정으로,

내 유익으로 하는 판단이 아닙니다.

언제나 십자가 앞에서 하는 판단입니다.

십자가 앞에 서면 내가 옳다던 말이 잠잠해지고,

내가 주장하던 권리가 내려놓아지고,

내가 붙들고 있던 고집이 녹아내립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주님,

자유를 내려놓고 종의 길을 택하신 주님,

아버지의 뜻 앞에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신 주님.

그 주님 앞에 서서 우리가 오늘 이렇게 고백하기 원합니다.

“주님, 제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제 권리보다 주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겠습니다.

제 길이 아니라, 주님의 길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모아지고,

어지럽지 않고 질서가 서게 되고,

불협화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찬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예배 위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조화와 평강이

충만히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