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초대교회 시절,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여러 도시를 다닐 때의 일입니다. 바울은 율법으로 보면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있었고, 이방인과도 거리낌 없이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도시에서 바울은 유대인 신자들과 함께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율법에 민감한 연약한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자유하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결국 바울은 스스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내려놓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자유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형제의 믿음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바로 이 문제를 교회에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첫째, 자유에는 유익과 덕을 세우는 책임이 있습니다. (23–24절)
① 강해 – “가하나, 유익하냐?”라고 묻는 신앙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말부터 인용합니다.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이 말씀은 바울이 만들어낸 말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주 하던 말입니다.
“우리는 자유하다. 율법에서 벗어났다. 모든 것이 가하다.”
신학적으로 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고기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자유 앞에 두 개의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이 유익하냐?” “그것이 덕을 세우느냐?”
바울은 ‘가능하냐’가 아니라 ‘유익하냐’를 묻습니다. 신앙의 질문이 한 단계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이 어린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해도 됩니까?”
“죄입니까?”
그러나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살립니까?”
“이것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세워줍니까?”
그래서 바울은 24절에서 기준을 분명히 말합니다.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여기서 바울은 자유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자유를 포기하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자유 위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과 책임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입니다.
내가 할 수 있어도, 형제를 위해서 안 할 수 있는 자유, 교회를 위해서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 그것이 복음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자유의 기준은 내가 할 수 있느냐에 있지 않고, 그 선택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살리고 세워 주느냐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내 자유가 누군가를 넘어뜨린다면, 그 자유는 더 이상 복음의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 없는 지식이 되고,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교회를 찢는 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말이 유익한지,
이 행동이 덕을 세우는지,
이 선택이 교회를 살리는 길인지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질문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성도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바로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신앙의 성숙’이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② 설명
성도 여러분, 신앙의 성숙은 자유를 얼마나 많이 누리느냐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자유를 얼마나 절제할 수 있느냐로 나타납니다.
어린 신앙은 늘 자기 중심입니다.
“나는 괜찮다.”
“나는 믿음이 있다.”
“내 양심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질문이 달라집니다.
“저 사람은 괜찮을까?”
“저 사람의 믿음은 세워질까?”
“내 행동이 혹시 시험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바울이 바로 그 차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유, 다른 사람의 형편을 돌아보지 않는 선택, 그것은 복음 안에서 주어진 자유가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자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 목적은 마음대로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서로 종이 되어 섬기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짜 자유한 사람은 “나는 안 해도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진짜 믿음이 깊은 사람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형제를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자유요,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③ 예화
어느 마을에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우물이 있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은 쉽게 물을 길을 수 있었고, 힘이 없는 사람은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이때 힘 있는 사람이 조금만 기다려 준다면 그 우물은 모두를 살리는 우물이 되지만, 자기 편의만을 앞세운다면 그 우물은 공동체에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④ 적용
여러분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교회를 세우는지 돌아보십시오. “내가 틀린 것은 아니다”가 아니라, “이것이 덕이 되는가?”를 묻는 성도가 되십시오. 그래서 모든 성도가 교회안에서,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성도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둘째, 믿지 않는 자 앞에서는 양심과 배려로 행하라. (25–30절)
① 강해 – “먹느냐, 안 먹느냐”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은 이제 신앙을 아주 구체적인 일상의 자리로 끌어옵니다. 믿음의 문제는 예배당 안에서만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무엇을 사고, 식탁에서 무엇을 먹고,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이 누군가의 믿음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25절 말씀입니다.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당시 고린도 성의 시장에서 파는 고기의 대부분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였습니다. 그러니 성도들 사이에 늘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 안 되는가?”
바울은 먼저 분명히 말합니다. 고기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26절에서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괜히 따지며 양심을 괴롭히지 말고 먹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바울은 매우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28절에 가면 분위기가 바뀝니다.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여기서 바울은 갑자기 기준을 바꾼 것처럼 보입니다. 아닙니다. 기준은 처음부터 하나였습니다. ‘고기’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바울이 금지하는 것은 고기가 아닙니다. 바울이 보호하려는 것은 사람의 양심입니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이건 우상에게 드렸던 고기입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직 신앙적으로 자유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바울은 말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먹지 말라.” 내가 자유하다고 해서, 내가 믿음이 강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양심을 무너뜨릴 권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이 행동이 저 사람을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느냐, 아니면 멀어지게 하느냐”입니다.
그래서 29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이 말은 자유를 주장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유를 스스로 제한할 줄 아는 성숙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② 설명 – 복음은 우리의 태도를 통해 판단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신앙을 결코 개인적인 영역에만 가두지 않습니다. “내 믿음은 나와 하나님 사이의 문제다”라고 단순하게 말하며 끝낼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고, 우리의 말과 태도, 삶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복음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말과 행동은 항상 누군가에게 복음의 얼굴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믿지 않는 자, 이제 막 교회에 나온 사람, 아직 믿음이 연약한 사람 앞에서는 우리의 태도 하나가 복음 전체로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 “이 정도는 괜찮지” 하고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교회는 저런 곳이구나” “믿음이란 저 정도구나” 라는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 앞에서의 우리의 태도는 복음의 신뢰도와 직결된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유는 항상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는 믿음의 삶이며, 복음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 있는 태도입니다.
③ 예화
이 말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 예가 있습니다. 마을 잔치에서 술이 나오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한 성도가 말합니다.
“나는 절제할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그 말 자체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 가운데 이제 막 신앙에 들어온 성도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성도는 그 모습을 보고 마음에 혼란을 겪고, 믿음의 길에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중요한 기준은 그 성도의 신앙 수준이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의 믿음의 상태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자기 자유보다 이웃의 믿음을 먼저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④ 적용
내 행동이 전도의 문을 여는지 닫는지 점검하십시오. 믿지 않는 가족, 이웃 앞에서 우리의 삶이 복음의 설명서가 되게 하십시오.
셋째,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하라. (31–33절)
① 강해
31절은 오늘 본문 전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말씀입니다.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바울은 신앙을 예배 시간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만, 예배당 안에 있을 때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아주 평범한 일상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의 만남도 모두 식탁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시며 이렇게 고백하십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는 먹고 마시는 일조차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33절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의 유익을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② 설명 – 삶의 방향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은 말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라고 말한다고 자동으로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삶의 방향으로 드러납니다. 내 선택의 기준이 “나에게 유익한가”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웃을 살리는가”로 옮겨질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자기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구원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순종의 삶이 결국 가장 큰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먹든지 마시든지, 말하든지 행동하든지, 작은 선택 앞에서도 이렇게 물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 질문을 붙들고 사는 삶이 바울이 말한 신앙의 목표요,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으나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십자가까지 순종하신 그 길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은 내 자유를 주장할 때가 아니라, 내 자유를 내려놓고 이웃을 살릴 때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이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옵소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우선되는 삶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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