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고린도전서 8장 1-13절, 제목: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라

신북중앙교회 2026. 2. 20. 00:30

▣ 서론: “배려의 힘” — 김연아 선수의 이야기

여러분, ‘피겨여왕김연아 선수를 다 아시지요? 김연아 선수가 현역 시절,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후 기자들이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늘의 영광을 누구에게 돌리고 싶습니까?”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함께 훈련한 선수들에게 감사합니다. 제가 이겼다고 해서 다른 선수가 못한 게 아니에요. 다만 제가 오늘 조금 더 잘한 것뿐이에요.”

이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자신만 잘난 것이 아니라, 함께 뛰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이 더 강한 사람이 있다면, 그 믿음이 약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넘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첫째, 지식보다 사랑이 앞서야 한다. (1-3)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 안의 논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우상 숭배가 심한 도시였습니다. 시장에 파는 고기 중 대부분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의 일부였습니다. 그래서 성도들 사이에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어도 될까?”

저도 어렸을 때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제사 드리고 난 음식을 먹어도 되는가? 입니다. 이 문제로 말씨움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잖아! 하나님만 참된 신이시니, 우상에게 바친 고기라도 그냥 고기일 뿐이야. 먹어도 아무 상관없어.”

이들의 말은 신학적으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한 분 하나님만을 믿고, 그 외의 모든 신은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이들의지식은 옳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태도였습니다. 그들이 그 지식을 사랑 없이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상의 제물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모습을 보고,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저 장로님도 먹는데, 나도 먹어도 되겠지?”

하지만 먹고 나서 마음에 죄책감이 들어 괴로워하는 성도들이 생겼습니다. 그때 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 지식만 있고 사랑이 없는 신앙은 교만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나는 옳다는 생각이 사람을 세우지 않고 오히려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반면, 사랑은 상대를 세워주고, 공동체를 든든하게 세웁니다. 바울은 2절에서 이렇게 이어서 말합니다.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무슨 뜻입니까? “내가 다 안다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사실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지식은 겸손으로 나타납니다. 진짜 아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고, 조용히 사랑으로 섬깁니다.

3절에서 바울은 이 원리를 완성시킵니다.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진짜 아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경 구절을 많이 아는 사람입니까? 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자연스럽게 형제와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흘러갑니다.

▣ 설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아는 것보다 사랑이 먼저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저 사람은 아직 몰라서 그래하고 속으로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이 빠진 지식은 사람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나를 세우지만, 사랑은 남을 세웁니다. 지식은 머리에서 나오지만, 사랑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지식은 나를 높이려 하지만, 사랑은 다른 사람을 살립니다.

▣ 예화

어느 시골 교회에 새로 나온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평생 절에 다니시다가 아들의 권유로 처음 교회에 발을 들이신 분이었습니다. 교회가 낯설고 예배 순서도 잘 모르셔서, 찬송가를 찾느라 자꾸 헤매셨습니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한 성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찬송가도 못 찾으면 어떻게 예배를 드리시겠어요? 다음부터는 미리 준비하고 오세요.”

그 말은 옳은 말이었지만,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할머니는 교회에 다시 오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교회에 가도 민폐만 끼치는구나…’ 하고 마음이 상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옳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세워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빠진 옳음은 사람의 마음을 닫게 하지만, 사랑이 담긴 말은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든든히 세웁니다.

▣ 적용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내가 맞다는 생각보다 이 말이 사랑이 되는가?” 먼저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식보다 사랑을 귀히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말하고 행동할 때, 그것이 누군가를 세워주는 일인지, 상처 주는 일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식으로 판단하지 말고,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자유를 자랑하지 말고 절제하라. 4절에 보면 바울은 말합니다.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바울은 지금 믿음이 강한 성도들의 입장을 먼저 인정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다.” 이 말은 신앙적으로 완전히 옳은 진리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신상도,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이라 할지라도, 본질은 그저 고기일 뿐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내 믿음이 흔들리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도 그들의 지식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옳았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식이 옳다 해도 사랑이 빠지면 안 된다 것입니다.

강해자유는사랑 안에서만의미가 있다

바울은 9절에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여기서자유라는 단어가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명 자유인입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고,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한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은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에 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는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 자유가 누군가를 넘어뜨리는 일이 되어선 안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유가 아니라, 사랑으로 절제하는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세우기 위한 자유입니다.

강해자유를 자랑하면 걸림돌이 된다

믿음이 강한 자들이 자유를 자랑하기 시작하면, 믿음이 약한 자들은 혼란스러워집니다.

“저 사람은 교회에서 존경받는 분인데, 우상 제물을 먹네? 그럼 나도 먹어도 되겠지?”

그런데 그렇게 행동한 후에, 그의 양심이 불편해지고 마음이 죄책감에 눌리게 됩니다. 결국 신앙이 흔들리고,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너희의 자유로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지 말라고 단호히 말하는 것입니다.

자유는 참 귀한 것이지만, 그 자유를 자랑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이 누군가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된 자유인은 자유를 마음껏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절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 예화

어느 교회 장로님은 예배 후에 늘 담배를 피우셨습니다. “오래된 습관이고, 교회 안에서만 안 피면 되지.”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새로 교회에 나온 젊은 형제가 그 모습을 보고

“장로님도 피우시는데 나도 괜찮겠지.” 하며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을 안 장로님은 깊이 뉘우치며 말했습니다. “내가 자유로웠지만,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이제는 끊겠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자유를 절제하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강해사랑은 절제를 통해 드러난다

참된 사랑은 절제를 통해 증명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자유는 절제와 함께 있을 때만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없는 자유는 교만이 되고, 절제가 없는 자유는 방종이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자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삶이 됩니다.

▣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든, 어떻게 살든, 우리를 정죄할 수 있는 율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형제를 아프게 하고 넘어지게 한다면, 그 자유는 더 이상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이유는 서로를 세워주고,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결단해야 합니다.

“나는 자유롭지만, 내 형제가 상처받는다면 나는 그 자유를 사용하지 않겠다.”

그것이 바로 사랑으로 절제하는 믿음의 성숙입니다.

 

셋째, 형제를 실족시키지 말라. 10절을 보면 바울은 구체적인 상황을 말합니다.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바울은 여기서 매우 현실적인 상황을 예로 듭니다. 믿음이 강한 성도가 우상 신전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건 단지 음식일 뿐이야.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나는 자유해

그 말은 맞습니다. 그의 신학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믿음이 약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형제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분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우상 제물을 먹네. 그럼 나도 괜찮겠지.”

그렇게 해서 따라 먹었는데, 그 후 그의 양심이 괴로워집니다. “내가 잘못한 것 같아.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 같아.” 결국 그 사람의 믿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무너집니다.

바울은 이것을실족하게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여기서실족(失足)”이라는 말은발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 믿음이 약한 형제가 나의 행동 때문에 신앙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을 말합니다.

강해형제를 실족시키는 것은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일

바울은 이어서 11절과 12절에서 강하게 경고합니다.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여러분, 이 말씀은 참으로 두렵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한 행동이 형제의 믿음을 무너뜨릴 수 있고, 그것은 단순히형제에게 잘못한 일이 아니라 주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형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구원하신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한 영혼도 예수님께는 생명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내가 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그 영혼이 상처받고 신앙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곧 주님의 피를 헛되이 만드는 일입니다.

강해바울의 결단그래서 바울은 13절에서 이렇게 결단합니다.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금식 선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의 결단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고기를 먹는 자유가 있지만, 내 형제가 넘어질 수 있다면 그 자유를 포기하겠다.”

바울은 자신의 권리보다 형제의 신앙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자유보다 사랑을, 편함보다 희생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분은 자유를 포기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바울은 그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운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사용할 때, 항상 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행동이 내 형제를 세우는가, 아니면 넘어뜨리는가?”

만약 그 행동이 형제를 실족시킨다면, 그것은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의 결단처럼, “내가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 마음으로 형제를 세우는 사랑의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하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자유를 포기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제사지낸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아닌지를 논의합니다. 사실 음식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5장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사람을 살립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 그것은 남을 험담하는 것, 비방하는 것, 모함하는 것,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입니다.

제사 지낸 음식을 먹는 문제는 사실 간단합니다. 또 술과 담배를 하는 행위도 간단합니다. 그 일을 행한다고 구원에서 탈락하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문제가 되고 논쟁이 되는 이유는 믿음이 강한자에게는 아무거리낌이 없지만, 믿음이 약한 자에게는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여러 번 강조를 하고 반복해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지식보다 사랑이 앞서야 합니다.” 아무리 옳은 말과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형제를 넘어뜨린다면 옳지 않습니다. 신앙의 참된 모습은 내 권리보다 형제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자신의 자유와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제는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는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남은 한주도, 내 말 한마디, 내 행동 하나가 누군가를 세우는 사랑의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성도,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신앙인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