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 현대 예화
최근에 뉴스에서 한 마라톤 선수의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이 선수는 올림픽을 목표로 매일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4시에 일어나 훈련했습니다. 친구들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었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상을 받기 위해 나를 이기고 싶습니다.”
그는 남을 이기기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말합니다.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마라톤 선수처럼, 우리 신앙도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마라톤 선수처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습니다. (12–18절)
1) 성경 강해
고린도전서 9장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과 전도 방식(권리와 자유)을 변호하는 부분입니다. 앞절에서 바울은 “사도에게도 생활비가 마땅하다”(7절 등)는 원칙을 제시한 뒤, 여기(12–18절)에서는 권리를 포기한 이유와 결과를 설명합니다. 중요한 열쇠는 ‘복음의 확장’과 ‘복음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기 절제’입니다. //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니 교회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생활비를 드리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목사님 사례비”, “전도자의 생활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2절과 18절입니다.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바울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례를 받으면, 혹시라도 저 사람들이 ‘바울이 돈 벌려고 복음 전하네’ 하고 오해하면 어떡하나? 그러면 복음을 못 받아들이지 않겠나.”
그래서 바울은 복음에 방해될 만한 것을 자기 삶에서 아예 없애 버린 것입니다.
“복음만 보이게 하고 싶습니다. 내 욕심, 내 권리 때문에 복음이 가려지면 안 됩니다.” 이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때로는 자기 손으로 일해서 먹고 살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길을 열었습니다.
즉,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복음만 전해지면 그게 내 기쁨이다.” 이 마음으로 사역한 것입니다.
✅ 2) 설명 – 어르신들이 바로 느끼도록 쉽게
바울은 자기 권리를 내려놓았지만 절대로 손해 봤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 한 명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그것이 바울에게는 가장 큰 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죽어가던 화분 하나가 있었습니다. 잎도 노랗고, 물을 줘도 반응이 없던 화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정성껏 돌 봐주고 나니 어느 날 보니까 새싹이 톡 하고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작은 새싹 하나만 봐도 “아, 살았구나!” 하고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바울에게도 그와 같았습니다. 사람 한 명이 살아나는 것, 영혼 하나가 하나님께 가까워지는 것, 그 작은 변화 하나가 그가 포기한 어떤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소중한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포기한 것보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더 큽니다.”
✅ 3) 예화 – 시골 교회 어르신 눈높이
한 농부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차가 늘어나니 주차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자기 밭 한쪽을 내어주었습니다.
“장로님, 밭이 줄어들어 손해 아닌가요?” 라고 누가 묻자 장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밭은 조금 줄었지만, 예배당은 더 넓어졌고, 성도들은 더 편하게 예배드리니 그게 내가 받을 복입니다.”
바울이 했던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입니다. 내가 조금 불편하고, 내가 조금 손해 봐도, 교회가 살아나고 복음이 전해지면 그것이 가장 큰 상이라는 것입니다.
4) 적용
우리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복음 때문에 하는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르는 희생일지라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시간, 물질, 마음을 드릴 때 그것이 바로 “상을 향한 달음질”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복음을 위하여 자기를 낮춥니다. (19–23절)
1) 성경 강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9-22절입니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롭다.” 즉,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어떤 사람에게 얽매일 이유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스스로 이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나는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나는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저 사람이 편하도록, 저 사람이 부담 없도록 내가 먼저 맞추었다.’ 라는 뜻입니다.
1)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유대인은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음식도 가리고, 안식일은 절대로 일하지 않았고, 작은 규칙도 어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실 율법의 행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그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방식에 맞추어 행동했습니다.
왜요? 그들이 마음을 열어야 복음을 듣기 때문입니다.
2) 율법 없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처럼
이 사람들은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생활방식이 유대인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있을 때 유대인처럼 까다롭게 굴지 않았습니다. “그건 안 돼! 그건 죄야!” 하며 계속 지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지켰습니다. 죄는 결코 함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에는 맞추되,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일에는 절대 따라가지 않은 것입니다.
3) 약한 사람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믿음이 약한 사람, 마음이 상처 많고 연약한 사람을 만날 때 바울은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왜 이것도 못 해?” “왜 믿음이 이것밖에 안 돼?”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수준까지 내려가 부드럽게, 천천히, 기다려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다. 왜냐하면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내 고집을 꺾는 일 내 방식 내려놓는 일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가는 일 이 모든 것이 사람 하나라도 살리기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핵심 메시지는 한 가지입니다.
“저 사람이 잘 듣도록, 저 사람이 마음 열도록, 내가 먼저 낮아지고 다가섰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내가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잘 받아들이게 하려고 내 마음을 낮추고 내려갔습니다.”
이게 바로 복음을 위한 겸손입니다. 겸손은 약함이 아니라, 사람을 얻기 위한 강한 선택입니다.
✅ 3) 예화 – 농촌 정서에 맞게
한 교회에 한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동네에 혼자 사는 무뚝뚝한 아저씨가 있었는데 말도 잘 안 하고, 교회에도 관심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권사님은 말로 전도하지 않고 조용히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에는 열무김치, 겨울에는 따뜻한 두부를 챙겨 드리며 “식사 때 드세요.” 한마디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몇 달 후,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줄 알았는데… 권사님 챙기는 걸 보니 교회가 따뜻한 곳 같소.” 그날부터 아저씨는 주일이면 조심스레 예배당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권사님은 큰일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섬김이 닫힌 마음을 열었고, 그 틈으로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바울이 말한 태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려놓고 낮아질 때, 마음이 열리고 복음이 전해집니다.
✅ 4) 적용 – 어르신들 삶과 연결
사람을 대할 때 “내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열린 마음, 낮은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부드럽게, 이해하기 쉽도록 해야 그 사람 마음에 복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낮아지면 하나님은 그 낮아짐을 통해 사람을 얻으십니다.
셋째, 상을 받기 위해 절제하며 달려가는 신앙입니다. (24–27절)
1) 성경 강해
바울은 운동 경기를 예로 들며 말합니다. 25, 27절입니다.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 지역에서는 큰 경기가 있었는데 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먹는 것, 자는 것, 하는 일을 철저히 조절했습니다. 왜요? 상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절제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 2) 설명 – 농촌 어르신에게 익숙한 표현
신앙은 논밭과 같습니다. 씨만 뿌려놓고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열매가 안 납니다. 잡초도 뽑아야 하고 물도 줘야 하고 벌레도 잡아야 하고 비바람이 와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이게 바로 절제입니다. 쓸데없는 것 버리고, 중요한 것을 붙드는 것.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방해되는 것들은 버리고, 은혜 되는 것에 시간을 써야 합니다.
✅ 3) 예화
축구 선수들을 보시면 금방 이해됩니다. 경기 전, 선수들은 무거운 것들을 전부 벗어놓습니다. 두꺼운 외투도 벗고, 무거운 장신구도 빼고, 딱 필요한 가벼운 유니폼과 신발만 신고 경기장에 들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조금이라도 가벼워야 더 빨리 뛰고, 더 오래 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도 같습니다. 마음에 미움, 불평, 죄, 걱정이 잔뜩 달려 있으면 축구 선수에게 무거운 가방을 메고 뛰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대로 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조금씩 내려놓을 때 우리 마음이 가벼워지고 믿음의 경기장에서 힘 있게, 끝까지 달릴 수 있게 됩니다.
✅ 4) 적용 – 삶에 바로 닿게
여러분, 우리 삶에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작은 죄라도 잡초처럼 뽑아야 합니다. 매일 말씀한 줄, 기도한 줄이라도 꾸준히 하려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주님 앞에 달려가려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가볍게,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 마무리 – 오늘 본문 전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내 욕심을 내려놓고(12–18절),
마음을 낮추어 사람에게 다가가고(19–23절),
절제하며 끝까지 달려가는 것(24–27절),
그것이 하나님께 상 받는 신앙입니다.”입니다.
✨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경에는 상을 향해 달려갔던 사람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히브리서 12장의 믿음의 증인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약속을 향해 나아갔고, 모세는 애굽의 보화를 버리고 하나님의 상을 선택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까지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달려온 길이 헛되지 않다.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렇게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헌신과 사랑과 눈물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서 아름다운 상으로, 영원한 기쁨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상을 향해,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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