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고린도전서 6장 12-20절, 제목: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

신북중앙교회 2026. 2. 13. 20:37

서론 (현대 인물 예화)

얼마 전 TV에 한 유명한 운동선수가 나와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위해 하루에 네 시간씩 운동을 하고, 음식도 철저히 관리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몸이 무너지면, 제가 평생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제 마음에 깊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 몸을 위해 이렇게 애쓰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우리의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운동선수는 자기의 명예와 성공을 지키기 위해 몸을 관리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더 귀한 이유 때문에 몸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의 몸이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산 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지를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의 몸은 자유롭게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몸입니다. 12절입니다.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 당시 고린도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12절 전반부)

먼저 12절을 보면,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원래 바울이 한 말이 아니라, 당시 고린도 사람들이 자주 쓰던 구호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 몸은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한다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생각이 있지 않습니까? “내 인생은 내 것, 내 몸은 내 것이니 내가 즐기고 싶은 대로 하겠다.” 고린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할 수 있다고 다 좋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2. 바울의 반박과 참된 자유 (12절 하반절)

12절 하반절에서 바울은 다시 말합니다.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고린도 사람들은 쾌락을 즐기면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욕심과 죄에 붙잡혀 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술에 묶인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은 나는 자유롭게 마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술 없이는 못 사는 종이 된 것입니다. 담배도, 도박도, 음란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예가 된 것입니다. 참된 자유는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죄에서 벗어나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3. 13절입니다.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음식과 배는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몸은 그렇지 않습니다. 몸은 하나님을 위해 지어진 것이고, 주님도 우리의 몸을 귀하게 여기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쾌락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도구입니다. 손은 단순히 밥하고 일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웃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도구입니다. 입은 단순히 먹고 말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도구입니다.

4. 14절입니다.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몸은 그냥 이 땅에서 잠시 쓰다 버리는 몸이 아닙니다. 부활로 이어질 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몸을 소중히 관리하고 거룩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아무렇게나 버리지 않는 이유는, 그 씨앗이 결국 열매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도 장차 부활의 영광스러운 열매를 맺게 될 몸입니다.

정리 및 적용

고린도 사람들은 내 몸은 내 것, 내 마음대로라고 주장한 반면, 바울은 몸은 주의 것, 주를 위해 존재한다.”고 선언합니다. 우리의 몸은 잠시 즐기다 끝나는 몸이 아니라, 부활과 연결된 몸입니다. 참된 자유는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 성경 예화: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에 끌려갔을 때, 왕이 주는 고기와 포도주를 거절했습니다( 1:8). 왜냐하면 몸을 더럽히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지혜와 용모가 뛰어나 바벨론에서 인정받았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 오늘 우리도 내 몸이 내 것이라 여기지 말고, 주님께 속한 몸임을 기억해서,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므로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15절입니다.

1.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15)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은 먼저 성도들의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말은, 우리가 단순히 주님의 소속만 된 것이 아니라 주님과 실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각 성도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고전 12:27).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단순히 개인의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결된 몸입니다.

바울이 창녀의 지체를 언급한 것은, 당시 고린도에 성적으로 문란한 이방 신전과 창녀 문화가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유혹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몸을 세상 죄의 도구로 사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선언입니다.

👉 정리: 우리의 몸은 단순히 나 개인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연결된 지체이므로 함부로 죄에 내어줄 수 없습니다.

2. 18절입니다.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바울은 단호히 명령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여기서 피하라는 적극적으로 도망치라는 말입니다. , 유혹을 그냥 참으라는 것이 아니라, 아예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죄(거짓말, 도둑질, 미움 등)는 주로 몸 밖에서 일어나지만, 음행은 직접 몸에 영향을 미치는 죄입니다. 몸은 성령의 전이자 그리스도의 지체인데, 음행은 그 몸 자체를 더럽히고 훼손합니다.

더 나아가, 내가 범하는 음행은 단순히 내 몸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정리: 음행은 다른 죄보다 더 파괴적이고 치명적입니다. 그것은 나만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과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오늘날 적용

오늘날 세상은 여전히 몸은 내 것,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문화를 퍼뜨립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므로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음란물, 부정한 관계, 성적인 타락은 단순히 개인적 실수나 사생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는 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몸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습니까?

먼저는 성령의 전임을 기억해야합니다. — 내 몸에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두 번 째는 유혹을 피하기입니다. — 음행은 이겨내려고 붙잡고 있으면오히려 넘어집니다. 가장 지혜로운 길은 요셉처럼 도망치는 것입니다( 39:12).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사용입니다. — 손과 발을 봉사와 사랑에 쓰고, 입술을 찬양과 격려에 사용하면 자연히 죄의 자리가 줄어듭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몸은 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렇기에 음행으로 더럽히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 알지 못하느냐?

음행을 피하라.”

오늘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유혹 앞에서 담대히 피하며, 몸을 거룩하게 지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성경 예화:

사사기 16장의 삼손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몸의 힘과 능력을 음란과 방탕에 사용하다가 결국 두 눈을 뽑히고,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하나님께 다시 몸을 드리자, 그가 죽는 순간에 블레셋 사람 수천 명을 무너뜨리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므로, 거룩을 지킬 때에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19 20절입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 본문의 두 축: 성령의 내주(19)와 값으로 사신 구속(20)

바울은 한 문장으로 두 가지 진리를 결합합니다.

첫째,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십니다(성령의 전). 이 말은 내 몸이 단순한 물질적 그릇이 아니라 거룩한 장소,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성전이라는 선언입니다.

둘째, 우리는 값으로 사심을 받았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치러진 대가로 인한 소유임을 밝힙니다. 이 두 진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윤리의 근거가 됩니다.

의미 하나 — “성령의 전이 주는 정체성

‘전(殿)’은 먼지가 앉는 곳, 아무렇게 놓아도 되는 공간이 아닙니다. 성전은 거룩함과, 하나님의 임재가 요구되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하찮은 도구가 아니라,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이므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생각··행동)이 성령의 임재 아래 심판과 축복을 받습니다.

의미 둘 — “값으로 산 것이 주는 책임

‘값으로 샀다는 표현은 구속의 비용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싼 값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의 피로 값지어진 존재입니다.

값으로 사신 분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소유권의 변화가 아니라 보상·헌신·충성의 요구를 동반합니다. 소비되는 물건이 아니라, 섬김과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것입니다. /

바울은 바로 이어서 결론을 내립니다 —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령이 거하신 성전이며 값으로 산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 사용 방식은 영광 중심적이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전은 거룩해야 합니다. 성도는 죄(특히 음란과 같은 몸을 더럽히는 죄)를 피하고 몸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몸은 예배와 섬김의 도구입니다. 기도·찬양·봉사·일상적 선행은 모두 몸을 통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입니다.

우리의 절제와 사랑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 때 세상은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부활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지체요, 성령의 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여러분, 오래된 성전을 보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작은 못 하나, 작은 나무 조각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경외심입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몸은 단순히 흙으로 지어진 육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값 주고 사신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몸을 함부로 쓰지 않고,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 성도 여러분, 오늘 집으로 돌아가실 때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 몸은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제 손과 발과 입술이 주님께만 쓰임 받게 하소서.”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의 몸은 단순히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살아 있는 예배가 될 줄 믿습니다.

마무리 문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후로 우리의 삶과, 우리의 몸, 그리고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제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