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고린도전서 5장 1-13절, 제목: 주 예수의 날에

신북중앙교회 2026. 2. 5. 12:44

1. 서론 (예화)

어느 교회에 신실한 성도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주일예배가 끝난 후 성도님이 목사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참 불편했습니다. 꼭 제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목사님은 미소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도님,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때로 우리를 찌르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마음 속의 죄와 교만을 드러내셔서 회개하고 새롭게 살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죄를 책망합니다. 교회가 죄를 덮어두면 결국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병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드러내셔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해 주 예수의 날을 바라보며, 우리 삶을 돌아보고 거룩함을 새롭게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1-2)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심각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지적합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당시 고린도는 우상 숭배와 음란함으로 유명한 도시였지만, 바울이 말하는 이 사건은 세상 사람들조차 혀를 찰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아버지의 아내, 즉 계모와 관계를 맺은 사건이었습니다. 율법(레위기 18:8)에서도 이런 관계는 엄격하게 금지된 죄였고, 당시 로마 사회에서도 수치스럽게 여겨졌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교회의 태도였습니다. 교회가 이 문제 앞에서 회개하거나 애통해 하지 않고, 오히려 교만했습니다. 교만은 단순한 자만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식과 은사를 자랑하며 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 우리는 은혜 받은 사람이다, 율법에 매이지 않는다 식의 잘못된 자유의식이 죄를 묵인하게 만든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교회의 심각한 영적 위기임을 강조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고, 심지어 묵인하고 자랑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무너뜨립니다. 교회는 세상보다 더 높은 도덕성과 거룩함을 요구받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에서도 수치스러운 일이 교회 안에서 용인된다면, 교회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2절에서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라고 말합니다. 통한히 여기다라는 말은 죄를 보고 가슴 깊이 애통하며 회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죄 앞에서 결코 무덤덤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은혜로 덮으려는 핑계를 대서는 안 됩니다. 죄를 죄로 인정하고 애통하며 회개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바울은 또한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책망합니다. 이는 단순히 사람을 내쫓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죄를 엄중히 다뤄야 함을 의미합니다. 죄를 방치하면 공동체 전체가 오염됩니다. 이 문제는 한 사람의 죄가 아니라 교회의 영적 건강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정리하면, 바울은 교회가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애통해야 하며, 죄를 철저히 다루어 공동체의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오늘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에게도 동일한 교훈입니다. 죄는 작은 것 같아도 반드시 확산되며 우리 영혼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죄를 미워하고 경계하며 회개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적용

우리도 죄를 대하는 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작은 거짓말, 미움, 불순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묵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위험한 신호입니다.

성경 예화: 아간의 죄 (여호수아 7)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뒤 모두가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작은 성인 아이성을 치러 갔을 때는 뜻밖에도 크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7 11절입니다.

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조용히 제비를 뽑아 조사해 보니, 범인은 아간이었습니다. 그는 여리고에서 본 금과 은, 외투를 욕심내어 몰래 장막 속에 숨겼던 것입니다. 그의 죄가 드러나자 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그 죄를 심판해 달라고 기도하며 죄를 치리했습니다.

그후에야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과 함께하셔서 아이성 전투에서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회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둘째, 징계는 사랑으로 하는 회복의 도구입니다. (3-5)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죄를 범한 사람을 그냥 두지 말고 사탄에게 내주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이 말이 너무 무섭게 들릴 수도 있지만, 바울의 의도는 벌을 주어 사람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바울이 말한 사탄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교회 공동체에서 그 사람을 잠시 내보내어, 죄의 무서움을 깨닫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임이기에, 공동체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보호에서 잠시 벗어나 세상의 고통을 느끼는 것을 뜻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그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게 되고, 회개하며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징계의 목적은 회복

세상에서는 벌을 주는 것이 상대방을 망하게 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징계는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내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 죄의 고통을 맛보게 하여 결국은 영혼이 구원받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징계하는 교회

죄를 그냥 덮어두는 것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을 꾸짖듯, 교회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지적하고 징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 6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징계를 통해 더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적용

교회 공동체는 서로의 연약함을 안타깝게 여기며 회복시키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죄를 덮어두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치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권면할 때 주님의 교회는 건강해집니다.

성경 예화: 다윗과 나단 선지자 (사무엘하 12)

다윗이 밧세바 사건으로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을 때,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찾아가 죄를 지적했습니다. 다윗은 책망을 받고 눈물로 회개하며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게 하셔서 우리를 살리십니다.

 

셋째, 거룩을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6-7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경고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 말씀은 작은 죄라도 가볍게 여기거나 그대로 두면, 그 죄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뜻입니다.

1. ‘누룩의 의미

당시 유대인들에게 누룩은 부정함과 죄를 상징했습니다. 누룩은 밀가루 반죽 속에 넣으면 보이지 않게 온 반죽에 퍼져서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죄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공동체 전체에 퍼져서 영적으로 병들게 합니다.

마치 한 집에 썩은 음식이 있으면 냄새가 온 집에 퍼지고 건강까지 해치는 것처럼, 죄는 방치하면 개인뿐 아니라 교회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2.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덩어리가 되라

바울은 너희는 누룩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유월절에는 집안에서 모든 누룩을 찾아 없애고,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기념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너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이제는 묵은 누룩(옛 죄, 옛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살아야 한다.”

3. 거룩을 지키는 교회의 모습

교회는 죄를 숨기거나 묵인하는 곳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거룩을 지키는 곳입니다. 작은 죄라도 그대로 두면 그 죄가 공동체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교회는 늘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깨끗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깨닫고 버리며, 예수님께서 주신 새 생명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적용

우리의 신앙생활과 교회의 모든 사역의 목적은 거룩입니다. 주님의 재림 날에 부끄럽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세우고 말씀으로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 예화: 이스라엘의 절기 무교절 (출애굽기 12)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직후 일주일 동안 집안의 모든 누룩을 제거하고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누룩은 죄의 상징이었고,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거룩하게 살도록 훈련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죄를 멀리하고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작은 죄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경고와 함께, 교회는 거룩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주십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준 책망은 단순한 꾸중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기 위한 사랑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와 회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 사랑으로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예화

한 시골 마을에 오래된 우물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맑아 보였지만, 밑바닥에는 오래된 오물이 쌓여 있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가 그 우물을 청소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냄새도 나고 흙탕물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오물을 다 퍼내고 나니, 그 우물에서는 더 맑고 깨끗한 물이 솟아났습니다.

우리 마음과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죄를 그냥 덮어두면 언젠가는 썩어서 공동체를 병들게 합니다. 그러나 아프더라도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맑은 영으로 채워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죄를 숨기지 않고 회개하며, 거룩을 지키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회개하며 새롭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회를 축복하시고 주님의 날에 온전히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날을 향하여 오늘도 내일도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