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고린도전서 6장 1-11절, 제목: “성령안에서”

신북중앙교회 2026. 2. 7. 06:16

서론 (예화와 설명)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에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오던 땅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두 성도가 그 땅을 두고 큰 다툼을 벌였습니다.

한 분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이 땅은 원래 내 조상이 교회에 기증한 땅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쓰더라도 나의 권리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 분은 이렇게 맞섰습니다. “아닙니다. 교회에 드려진 이상 이 땅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고, 이제는 교회의 소유입니다. 개인이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의견 차이처럼 보였지만, 점점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결국 교회 안에서 서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재판은 몇 년을 끌었고, 그 과정에서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가 사랑을 말하면서도 결국 땅 때문에 싸우는구나. 다른 집단과 다를 게 뭐가 있어?”

그 일로 교회의 이름은 땅보다 더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 모두 결국 재산은 지켰을지 몰라도, 성도들 사이의 사랑과 신뢰는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때로는 그 권리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6 1-11절에서 바울은 바로 이 점을 책망하며 말씀합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과 달리 살아야 하고, 성령 안에서 변화된 새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세 가지 모습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그렇다면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첫 번째 모습은 무엇입니까?

첫째, 분쟁을 피하는 삶입니다. 1절입니다.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본문 강해:

여기서 바울은 성도들 사이의 다툼을 세상 법정으로 가져간 것을 강하게 책망합니다. “구태여라는 말은 굳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라는 뉘앙스로, 바울의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성도끼리의 문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의 지혜와 사랑 안에서 풀어야 하는데, 고린도 교회는 세상 법정, 즉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 교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2절과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 성도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세상을 심판할 권세를 받을 존재입니다. 그만큼 성도의 정체성은 존귀합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의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으로 달려가는 것은 성도의 권위와 교회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4 세상 일에 관한 재판을 할 때, 교회 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세우라는 말입니까?

고린도 교회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지혜로운 장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회 안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내세우거나, 더 나아가 세상 법정에 맡긴 것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가장 마음 아파한 것은 6절의 말씀입니다.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 성도들끼리 다투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것을 세상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어 복음의 영광을 가리우고 교회를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경적 배경

당시 고린도는 법정 문화가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이 작은 일에도 쉽게 법정으로 가는 풍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세상의 방식과 달라야 했습니다. 교회의 문제는 교회 안에서, 믿음의 원리에 따라 풀어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8장에서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먼저 가서 상대방과만 상대하라. 듣지 않으면 두세 증인을 데려가라.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라 말씀하셨습니다. , 교회의 문제는 세상 법정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라는 것이 성경적 원리입니다.

성경 예화: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다투었을 때, 아브라함은 우리는 한 친족이 아니냐?”라며 다툼을 피하고, 오히려 좋은 땅을 조카 롯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했습니다.

적용: 성령 안에 사는 성도는 다툼을 피하고,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작은 문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용납하고 양보하는 모습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성도는 단지 싸우지 않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두 번째 모습은

 

둘째, 거룩함을 지키는 삶입니다. 7-8절입니다.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본문 강해: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 송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교회와 성도의 명예를 크게 훼손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뚜렷한 허물이란 말은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는 잘못, 드러난 수치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 성도라면 억울함을 당할지라도, 속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성도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8절에 보면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라고 책망합니다.

그들은 억울함을 당하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불의를 행하는 쪽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믿지 않는 자가 아니라, 자기 형제, 같은 성도에게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잘못을 넘어, 교회의 거룩함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죄였습니다.

바울은 9-10절에서 이런 삶의 결과를 분명히 경고합니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그리고 이어서 여러 죄목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음행하는 자 (성적인 죄)

우상 숭배하는 자 (하나님보다 세상을 섬김)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적, 탐욕하는 자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단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단순히 이런 행동하지 마라라고 도덕적 교훈을 주는 게 아니라, 성도의 정체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 성도는 이런 자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성령 안에서 사는 성도는 단지 싸우지 않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 거룩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백성의 필수 조건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완성은 바로,

 

셋째,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11)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본문 강해:

여기서 바울은 세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강조합니다.

씻음

씻음”은 죄로 더럽혀진 과거가 깨끗하게 씻겨졌음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5:26에서 바울은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과거 죄, 수치, 실패가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씻겨졌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도 음행, 우상 숭배, 도적질, 술 취함 등 다양한 과거의 죄가 있었지만, 이제는 주님의 은혜로 깨끗하게 된 것입니다.

거룩함

“거룩함”은 단순히 죄 사함을 받은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되어 새로운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2:14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 성령께서 성도를 세상과 구별되게 하셔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이끄십니다. 성령 안에서 거룩은 단순한 외적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내적 본성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

의롭다 하심 이는 법정 언어입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더 이상 죄인으로 규정되지 않고, 의인으로 선언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1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말씀합니다.

,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 불의한 자에서 의로운 자로 신분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과거에는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새 사람입니다. 그러니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지 말고, 성령 안에서 새 사람답게 살라.”

성경 예화

에베소서 4:22-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옛 사람은 죄와 욕심에 붙잡혀 살았지만, 새 사람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우리도 과거에는 죄인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탐욕에 붙잡혀 살았고, 누군가는 거짓과 음행 속에 살았고, 누군가는 술과 세상 쾌락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는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옛 사람으로 살 이유가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정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사람, 교회에서는 서로를 세워주는 사람, 세상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고린도전서 6 1-11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배웠습니다.

첫째, 분쟁을 피하는 삶입니다.

성도는 세상 법정이나 믿지 않는 사람 앞에서 다투지 않습니다.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교회와 복음을 세우기 위해 사랑과 양보를 선택합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땅을 양보했던 것처럼, 성령 안에서는 내 권리보다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먼저 생각합니다.

둘째, 거룩함을 지키는 삶입니다.

성도는 단순히 싸우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음행, 우상 숭배, 탐욕, 거짓 등 모든 불의를 피하고,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세상이 타협하라 해도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며 거룩을 선택해야 합니다.

셋째, 새 사람으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역사로 씻음, 거룩함,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과거의 죄와 허물은 더 이상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종합 적용

오늘 말씀은 단순한 교리나 교훈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 말과 행동, 사람들과의 관계 까지도 새롭게 하라는 도전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안팎에서 분쟁을 피하고, 모든 일에서 거룩함을 지키며, 성령 안에서 변화된 새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이 바로 성령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단호히 말했습니다. “너희가 옛 사람으로 살지 말라. 성령 안에서 새 사람으로 살아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십시오. 그리하여 성령안에서 변화된 삶을 살며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과 교회의 영광을 위해 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