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헌신 – 은혜에 대한 응답, 본문: 이사야 6장 6–8절, 로마서 12장 1–2절

신북중앙교회 2026. 1. 20. 11:57

서론 

몇 해 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한 의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안정된 자리와 넉넉한 보수를 내려놓고,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땅으로 스스로 들어갔습니다. 포탄 소리가 멈추지 않고, 전기가 끊기며, 약조차 부족한 그곳에서 그는 매일 생명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을 살려냈습니다. 한 기자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남아 계십니까?”

그 의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한때 죽음의 문턱에 섰던 사람입니다. 살아난 것 자체가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여기서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받은 은혜에 반응하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의 선택에는 계산보다 감사가 있었고, 손해보다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자연스럽게 헌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사야와 사도 바울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도 먼저 은혜를 보았고, 은혜를 입었고, 은혜 앞에서 가만히 머물 수 없었습니다.

은혜는 사람을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사람을 깨우고, 변화시키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 서서 이렇게 고백하게 만듭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사야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기 죄를 깨닫고, 정결케 하시는 은혜를 경험했을 때, 그의 인생이 어떻게 헌신으로 향하게 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닫는 은혜. (이사야 6:6–7)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1. 성경강해

성도 여러분, 이사야는 어느 날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고, 천사들이 서로 화답하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찬송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거룩한 임재 앞에 서자, 이사야는 먼저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서니, 자기의 죄와 허물, 연약함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난 것입니다. 빛 앞에 서면 먼지가 보이듯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의 죄가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를 책망하거나 밀어내지 않으셨습니다. 한 천사를 보내셔서 제단에서 숯불을 집어 그의 입술에 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그 숯불은 아무 불이 아닙니다. 성전의 제단에서 나온 불입니다. 제단은 짐승이 피 흘려 드려지던 곳, 죄를 대신 짊어지는 희생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 숯불은 심판의 불이 아니라, 속죄의 불, 용서의 불이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때가 묻은 옷을 말로만 깨끗하다고 한다고 해서 깨끗해지지 않는 것처럼, 죄도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씻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은혜로, 용서로, 이사야의 입술을 만져 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장면이 또 나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배 위에서 무릎을 꿇으며 고백합니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그때 예수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사야도, 베드로도 먼저 자기 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습니다. 그 은혜가 그들의 인생을 바꾸었고, 그 은혜가 그들을 사명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헌신은 결심이 강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해 보겠습니다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내가 이렇게 용서받았구나, 이렇게 사랑받았구나하는 은혜의 감격에서 시작됩니다.

병이 나아 본 사람이 건강의 소중함을 알듯이, 죄 사함을 받아 본 사람이 은혜의 귀함을 압니다. 이사야는 자기 죄를 보고 절망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불로 만지시며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바로 다음 고백, “주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헌신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먼저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내 힘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까지 살아온 사람입니다.”

돌아보면 넘어질 때도 있었고, 실수할 때도 있었고, 말로 다 하지 못할 연약함과 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늘 이 예배 자리에 서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정죄하며 “나는 안 돼, 나는 자격이 없어하고 물러설 사람이 아니라, 용서받은 자로서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다시 사용해 주십시오.”

오늘 우리의 결단은 이렇습니다.

첫째, 죄를 숨기지 않고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결단입니다.

이사야가 입술의 부정을 고백했듯이, 우리도 마음의 상처와 연약함과 잘못을 주님께 맡깁시다. 회개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회복의 길입니다.

둘째, 용서받은 사람답게 살아가겠다는 결단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미움보다 용서를, 원망보다 이해를 선택합시다. “주님이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도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셋째, 은혜에 감사하며 쓰임 받기를 원하는 결단입니다.

“주님, 크고 대단한 일은 못해도 기도로, 섬김으로, 말 한마디의 위로로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사용해 주십시오.”

정죄가 아니라 용서, 절망이 아니라 회복을 경험한 사람은 반드시 삶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마음에 이런 고백이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주님, 은혜로 살았습니다. 이제 남은 삶도 은혜에 감사하며 주께 드리겠습니다.”

 

둘째, “내가 여기 있나이다부르심에 응답하는 헌신. (이사야 6:8)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1. 성경강해

성도 여러분, 이사야의 죄가 사함을 받고 마음이 깨끗해진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은 이사야를 향해 곧바로 “너는 가라, 너는 해야 한다하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온 하늘 앞에서, 그리고 이사야의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질문하신 것입니다.

“누가 갈까? 누가 나를 대신하여 이 백성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해줄까?”

그 순간 이사야의 마음에는 두려움보다 은혜의 감격이 더 컸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죄인이라 고백하던 자신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고,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뒤로 숨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소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늘 이렇게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아브라함아하시자, 그는 곧바로내가 여기 있나이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어린 사무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응답했습니다.

모세 역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두려워했지만 결국제가 가겠습니다하고 순종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완벽해서 쓰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죄 없어서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모두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신 뒤에 부르십니다. 상처 입은 사람을 고치신 뒤에, 그를 다른 사람을 살리는 도구로 세우십니다.

그래서 헌신은 억지가 아닙니다. 끌려가는 것도 아닙니다. “가라!”는 무거운 명령이기 전에, “누가 갈까?” 하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입니다.

마치 부모가 일손이 필요할 때 “누가 엄마 좀 도와줄래?” 하고 말하면, 사랑을 많이 받은 자녀가 “제가 할게요하고 먼저 손을 드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을 모르면 가만히 있지만, 사랑을 아는 아이는 스스로 나섭니다.

이사야의내가 여기 있나이다는 억지의 소리가 아니라, 은혜에 감동된 마음에서 터져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에 적용해 봅시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조용히 물으십니다. “누가 가겠느냐? 누가 나를 위하여 섬기겠느냐?”

이 부르심은 꼭 먼 나라로 선교를 가라는 말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교회에서, 마을에서, 그리고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일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먼저 가정에서입니다. 

기도로 가족을 품어 줄 사람, 상처 난 마음을 위로해 줄 사람, 믿음의 본을 보여 줄 어른을 찾고 계십니다. 그때 우리는누군가 하겠지하지 말고, “주님,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둘째는 교회 안에서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소하는 손길, 안내하고 섬기는 손길, 아픈 성도를 찾아가 기도해 주는 손길, 조용히 헌금하며 교회를 세우는 손길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십니다. 크고 드러나는 일이 아니라도 하나님은 충성된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셋째는 이웃과 세상 속에서입니다.

외로운 사람 곁에 앉아 줄 사람,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사람, 복음을 전할 한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주님, 제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받았기에 응답합니다. 힘이 많아서가 아니라, 순종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이사야의 고백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오늘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산 제사로 드려지는 삶의 헌신. (로마서 12:1–2)

1. 성경강해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로마서 12 1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구약 시대에는 제단 위에 짐승을 올려놓고 불로 태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물은 한 번 드려지면 끝이었습니다. 죽은 제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이제는 짐승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제물이 아니라, 숨 쉬고 살아 있는 제사, 날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사라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헌신은 한 번의 감동으로 끝나는 결심이 아닙니다.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고, 삶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산 제사의 삶입니다.

성경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다니엘입니다. 그는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에 끌려가 살면서도 그 나라의 우상 숭배와 풍습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먹는 것, 기도하는 것, 삶의 기준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사자굴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진 산 제사였습니다.

또 한 사람은 마리아입니다. 천사가 와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을 때, 마리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앞날이 보이지 않아도, 오해를 받아도, 자기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맡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산 제사로 드려진 삶입니다.

성도 여러분, 헌신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배당 안에서의 섬김도 귀하지만, 가정에서, 밭에서, 일터에서, 병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의 전부가 헌신입니다.

밥을 짓는 손길로, 손주를 위해 기도하는 무릎으로, 이웃을 섬기는 작은 친절로, 날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에 적용해 봅시다.

성도 여러분, 산 제사로 드린다는 것은 한 번의 감동으로 끝나는 결심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결단은 이렇게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먼저, 시간을 주께 드리는 결단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열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바쁘고 피곤해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 제 하루의 첫 자리를 주께 드립니다.”

둘째, 몸과 건강을 주께 드리는 결단입니다.

이 몸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임을 기억하며, 절제하며 살고, 남은 힘으로 주님을 섬기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이 몸으로 주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셋째, 가정과 자녀와 손주를 주께 드리는 결단입니다.

내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맡기며,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고 “주님, 우리 가정을 주의 손에 맡깁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넷째, 물질과 삶의 형편을 주께 드리는 결단입니다.

받은 것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드리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 제 손에 있는 것을 주의 나라를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남은 인생을 주께 드리는 결단입니다.

앞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주님, 남은 날들도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주님 기쁘시게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산 제사입니다. 제단 위에 한 번 올려놓고 끝나는 제사가 아니라, 날마다, 매 순간,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입술에서 이런 고백이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제 시간도, 재능도, 가정도, 인생도 모두 주께 드립니다. 이제 제 삶이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을 다시 마음에 담아 봅시다.

첫째, 이사야처럼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먼저 죄를 깨닫고 용서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숯불로 입술을 만지신 것처럼,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헌신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정죄가 아니라 용서, 두려움이 아니라 은혜의 감격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은혜를 입은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했듯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누가 가겠느냐? 누가 섬기겠느냐?”

그때 우리는 뒤로 숨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에 감동되어 손 들고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헌신은 한 순간의 결심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의 삶이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삶의 자리에서 날마다 하나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참된 헌신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는 핍박자였으나 은혜를 입었고, 그 은혜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복음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 드리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헌신은 억지로 짊어지는 짐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입니다.

오늘 우리의 결단이 이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는 은혜로 살았습니다. 죄 사함의 은혜, 지켜 주신 은혜, 여기까지 인도하신 은혜로 살았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이제 제 삶을 주께 드립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