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인생의 새 출발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가 되면 사람들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올해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시작해 보고 싶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의 새 출발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습니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마음도 쉽게 지치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 가운데 김연아 선수를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선수였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은 늘 멋지고 당당해 보였지만, 그 뒤에는 수없이 많은 넘어짐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발목이 다쳐 제대로 걷지도 못할 때가 있었고, 무릎이 아파 연습조차 하기 힘든 날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김연아 선수는 “이제 그만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연아 선수가 늘 하던 말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믿어주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해 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이 참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새 출발을 혼자 결심하고, 혼자 해내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누가 함께하느냐가 인생을 결정합니다.
믿음의 새 출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의지가 강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계획이 잘 세워져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믿음의 새 출발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나이가 많았고, 이미 삶의 터전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 한 부류는 갈릴리 바닷가의 어부들입니다. 그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한 가지 공통된 말씀을 하십니다.
“떠나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그때 사람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새해를 맞이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우리 인생의 새 출발이 다시 한번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첫째, 새 출발은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됩니다. (창세기 12:1–4)
① 강해
여러분,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아주 조용하게 시작됩니다. 큰 기적도 없고, 화려한 사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창세기 12장 1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이제는 자리를 잡고, 움직이지 않아도 될 나이입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보다는 그냥 지금 있는 곳에서 편히 지내고 싶을 나이입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갈 데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로 가라”는 지도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내가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길이 먼 것이 아니라 떠나야 한다는 것 자체였습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자리가 불편해도 익숙합니다. 지금 형편이 힘들어도 익숙합니다. 그래서 떠나는 것이 늘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잘 되기 위해 떠나라”가 아니라 “믿음으로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떠나라”는 말은 집을 팔고 이사하라는 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삶의 방향을 바꾸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네 방식에서 떠나라
이제는 네 계산에서 떠나라
이제는 네가 붙잡고 있는 안전에서 떠나라
그리고 나를 믿고 걸어오너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목적지를 몰랐습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짧게 이렇게 말합니다.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설명도 없고, 변명도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농사를 지어 보신 분들은 잘 아십니다. 지난해 남은 씨앗을 그대로 두면 올해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도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묵은 것을 내려놓아라.”
묵은 미움
묵은 원망
묵은 상처
“나는 안 된다”는 오래된 생각
이것들을 꼭 붙잡고 있으면 새해의 은혜가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출발은 무언가를 더 붙잡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그냥 떠나라고만 하지 않으십니다. 말씀 뒤에 약속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아브라함이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길이 분명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도 한 가지씩 내려놓아야 합니다.
미움을 내려놓고
원망을 내려놓고
포기를 내려놓고
“이제 나는 안 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말씀 앞에 이렇게 고백하면 됩니다.
“하나님, 잘 모르지만 떠나겠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신다면 가겠습니다.”
그 고백 위에 하나님께서 새 길을 여시고 새 은혜를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새 출발은 “즉시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창세기 12:4)
① 강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 12장을 읽다 보면 참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앞에서는 하나님 말씀이 길게 나오는데, 아브라함의 반응은 한 줄로 끝납니다. 4절 앞부분입니다.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설명이 없습니다. 토를 달지 않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겠습니다”라는 말도 없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가겠습니다”라는 말도 없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언제 떠났는지, 무엇을 준비했는지, 얼마나 두려웠는지를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 가지만 말합니다. 말씀을 따라갔다.
이것이 바로 즉시 순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믿음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해서 생긴 믿음이 아닙니다. 앞날이 훤히 보여서 떠난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다 알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고요.”
“상황이 좀 좋아지면요.”
“마음이 준비되면요.”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은 계산하면 떠날 수 없었습니다. 나이를 생각해도 떠날 수 없었습니다. 형편을 생각해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어르신들 어릴 적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님이 밭에서 일하시다가 “얘야, 이리 와라” 하시면 이유를 묻지 않고 갔습니다.
“왜요?”
“어디 가요?”
“지금 바쁜데요?”
이러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님이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믿음,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순종은 가능합니다.
성도 여러분,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큰일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주 기본적인 말씀을 다시 하십니다.
“기도하라”
“용서하라”
“예배의 자리를 지켜라”
이 말씀들은 새롭지 않습니다. 이미 많이 들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순종하느냐입니다.
순종은 크고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하루 기도 한 번 더 하는 것, 미뤄 두었던 용서의 마음을 결단하는 것, 몸이 힘들어도 예배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의 순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지금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나중에”가 아니라 “오늘”입니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처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순종 위에 하나님께서 새 길을 여시고 새해의 은혜를 반드시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 새 출발은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18–22)
① 강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떠나는 믿음을 보여 주었다면, 신약 성경에서는 따르는 믿음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처음으로 부르신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학자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닙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아주 단순하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4장 19절입니다.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이 말씀은 “너희가 지금보다 더 잘살게 해 주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힘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는 약속도 아닙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이제부터 너희 인생의 방향을 나와 함께 가자.”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 말씀을 듣자마자 그물을 버려두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배에 있던 자리에서 배를 두고, 아버지를 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장면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닙니다. 그물은 그들의 밥줄이었습니다. 배는 그들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물을 손에 쥔 채 나를 따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물을 내려놓고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손이 가득 차 있으면 예수님의 손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무언가를 더 붙잡는 길이 아니라 무언가를 내려놓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팡이를 꼭 쥐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없습니다. 놓아야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내 고집을 내려놓아야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내 욕심을 내려놓아야 주님의 뜻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큰 소리로 부르지 않으십니다. 부담스럽게 부르지도 않으십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자리에서,
너의 형편 그대로,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님은
“형편이 나아지면 오너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준비가 다 되면 오너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주님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한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오면 인생이 편해질 것이다”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가겠다.”
예화: 하나님이 부르실 때 떠났던 사람, 모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는 또 한 사람의 새 출발이 나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젊은 날이 아니라 인생의 후반부, 광야에서 양을 치던 노인이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왕궁을 떠났고, 이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찾아오셔서 “내 백성을 이끌라”고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말도 잘하지 못했고,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실 때 끝내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그의 인생 후반부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출발은 젊은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이가 많다고 늦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올해 새해, “떠나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고, “따르라” 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과 함께 새 출발하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몇 해 전 우리나라에 큰 산불이 났던 적이 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산이 타 버리고, 집과 논밭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은 “이제 다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 봄,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새까맣게 타 버린 땅에서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씨를 따로 심은 것도 아닙니다. 불에 타 버린 것 같았지만, 땅속 깊이 생명이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햇빛이 비치고, 비가 내리자 다시 살아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지나온 시간 속에 후회도 있고, 아픔도 있고, “이제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끝난 인생이 없습니다. 다 타 버린 것 같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새해의 출발점은 우리의 계획이 아닙니다. 우리의 결심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떠나라.”
묵은 생각에서 떠나라.
두려움에서 떠나라.
포기에서 떠나라.
그리고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내 힘으로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길은 우리가 책임지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길입니다. 우리는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2026년, 하나님과 함께 새 출발하는 복된 한 해 되시기를,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 은혜로워지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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