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 하나님은 작은 곳에서 큰 일을 시작하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일하십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서 왕의 계보는 장자가 아니라 넷째 아들 유다를 통해 이어졌고, 사무엘이 왕을 세우러 갔을 때도 하나님은 키 크고 잘생긴 형들이 아니라 들판에서 양을 치던 막내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 역시 처음부터 위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양을 치며 조용히 세월을 보내던, 이름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크고 화려한 자리보다 작고 낮은 자리에서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사람의 눈에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 작은 마을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구원자, 온 세상의 소망이 되실 메시아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림절 네 번째 주일을 맞이한 오늘, 우리는 화려한 능력이나 눈에 띄는 조건이 아니라 겸손하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구원을 맞이하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작고 낮은 자리에서 구원을 시작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2절은 미가서 전체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메시아 예언의 말씀입니다.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① 강해
하나님은 먼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라는 지명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지만, 정치의 중심도 아니었고,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도 아니었으며, 사람들이 기대를 걸 만한 명성 있는 도시도 아니었습니다.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 말은 베들레헴이 실제로도 작았고,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도 하찮게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선언이 그 다음에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왕궁에서, 힘 있는 가문에서 구원자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전혀 다른 곳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곳에서 큰 구원을 시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조건을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평가를 따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증거합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작고 연약해 보였던 다윗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또 사사 기드온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므낫세 지파 중에 가장 작은 자요, 내 아버지 집에서도 가장 작은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기드온을 통해 미디안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이 말씀이 더 분명하게 성취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궁이 아니라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된 약속의 성취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겉으로 보기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한 아기처럼 보이지만, 그분의 근본은 영원 전부터 계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작게 시작하시지만 그 구원의 근원은 영원하고 완전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이 작아 보일 수 있고, 우리의 형편이 초라해 보일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크고 준비된 사람을 찾으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대림절을 맞아 우리가 붙들어야 할 믿음은 이것입니다.
“주님, 제 자리가 작아 보여도 이 자리를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소서.”
하나님은 오늘도 작고 낮은 자리에서 당신의 구원을 시작하시는 분이십니다.
③ 예화
여러분, 밤에 집 안이 캄캄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집 전체를 밝히는 것은 거대하고 화려한 장식이 아닙니다. 손가락 하나로 켤 수 있는 작은 전구 하나입니다.
그 전구는 작고 눈에 띄지 않지만 켜지는 순간, 어둠은 물러갑니다. 전구가 크다고 더 밝은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전기가 연결되어 있느냐입니다.
베들레헴이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하나님의 뜻과 연결된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온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신 것입니다.
④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너무 작습니다. 가진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연결된 작은 사람 하나가 한 가정과 한 교회, 한 마을을 밝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화려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연결된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대림절을 보내는 이 시간, 우리의 자리가 작아 보여도 하나님 손에 붙들린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겸손히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신뢰합니다. (미가 5:3)
① 강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가서 5장 3절 말씀은 짧지만 매우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당장 구원을 이루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가장 완전한 때를 아시기 때문에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은 그 기다림을 “여인이 해산하기까지”라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해산은 사람이 앞당길 수도, 자기 뜻대로 늦출 수도 없는 시간입니다. 생명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조급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셨지만 그 약속을 이루는 시간은 사람이 보기에 느리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이 진리를 여러 인물을 통해 분명히 보여줍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약속은 즉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니라 믿음이 연단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요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꿈을 주셨지만 그 꿈은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예로 팔리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그는 단숨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윗도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즉시 왕좌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사울을 피해 도망치며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은 다윗의 믿음과 인격을 다듬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기다림은 방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붙들어 두고 계십니다. 본문이 말하는 “붙여 두시겠고”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놓아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겸손히 기다리는 사람은 “왜 이렇게 늦습니까?”라고 따지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아직 때가 아니라면 제가 주님의 때를 신뢰하겠습니다.”
대림절은 바로 이 믿음을 배우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오실 분이었지만 정확히 하나님의 때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의 기대보다 늦어 보였지만 그때가 구원의 가장 완전한 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아직 응답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늦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가장 좋은 때를 향해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기다리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③ 예화
여러분, 떡을 해 보신 분들은 이 과정을 잘 아실 것입니다. 막 반죽한 떡은 바로 찌지 않습니다. 겉보기에는 이미 충분해 보이지만 정해진 시간만큼 반죽을 쉬게 해야 합니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쪄버리면 떡은 제대로 부풀지 않고 딱딱해집니다.
반죽을 쉬게 하는 시간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떡이 완성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조금만 더 기다려라”고 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라 완성을 향한 준비의 시간입니다.
④ 적용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우리 삶에도 이런 ‘기다림의 시간’이 있지는 않습니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어 보여도 하나님은 그 시간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빚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기다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겸손히 기다린 사람은 참된 평강을 누립니다. (미가 5:4–5)
① 강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가서 5장 4절과 5절은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 삶에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먼저 4절 말씀입니다.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본문은 메시아를 목자로 묘사합니다. 목자는 앞에서 몰아가지 않고 앞에서 인도하며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양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없기에 목자가 있을 때에만 안전합니다.
“서서 목축하니”라는 말씀은 단순히 먹을 것을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삶 전체를 책임지고 돌보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 말은 두려움 없이 안정과 평안을 누리며 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 결정적인 선언이 나옵니다.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시아가 평강을 주신다가 아니라 메시아 자신이 평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환경이 좋아야 유지됩니다. 건강해야 평안하고, 형편이 나아야 평안하고, 문제가 없어야 평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은 다릅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환경이 여전히 불안해도 마음 깊은 곳에 임하는 평강입니다. 성경은 이 평강을 여러 장면에서 보여줍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광풍이 이는 갈릴리 바다에서 배 위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예수님은 풍랑 속에서도 평안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 한마디로 바다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을 잠그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 가운데 서서 가장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들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주님이 함께하실 때 그들의 마음은 평안을 회복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고백합니다. 환경은 평안을 주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겸손히 기다린다는 것은 문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 한가운데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대림절을 보내는 이 시간, 우리가 기다리는 분은 형편을 조금 나아지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 참된 평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주님 안에 있을 때 환경이 바뀌지 않아도, 상황이 여전히 어렵다 해도 우리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화
그 평강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일상의 한 장면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가 세차게 오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런 날이면 나무 위에 있는 새 둥지도 크게 흔들립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불안해 보입니다.
그런데도 그 둥지 안에 있는 새끼 새들은 의외로 조용합니다. 왜냐하면 어미 새가 자기 날개로 새끼들을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는 폭풍이 불고 있지만 어미 새의 날개 아래에 있는 새끼는 비를 맞지 않고, 바람에 쓰러지지 않습니다. 환경이 잠잠해져서가 아니라 누구의 품 안에 있느냐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문제가 사라져야 평안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품 안에 있을 때 폭풍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평강이 되십니다.
④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 폭풍이 불지 않는 날은 많지 않습니다.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앞날에 대한 염려가 끊임없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이 문제를 빨리 없애 주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문제를 즉시 없애시기보다 우리를 당신의 품 안으로 부르십니다.
어미 새의 날개 아래에 있는 새끼가 바람을 이기려고 애쓰지 않듯이, 우리도 상황을 통제하려고 애쓰기보다 주님의 품 안에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히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품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머물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예배의 자리를 놓지 않는 것이 바로 평강을 누리는 길입니다.
대림절을 지나는 이 시간,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주님 안에 거함으로 참된 평강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대 인물 중에 “겸손으로 기다린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 넬슨 만델라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인종차별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 시간은 누구라도 원망과 분노로 무너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렇게 침묵하십니까?” 그런 질문이 마음에 가득 찰 수밖에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만델라는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복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며,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준비되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처럼 보였지만 그 기다림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그는 권력을 잡을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품을 사람으로 빚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자유의 날이 왔을 때 그는 과거를 되갚는 지도자가 아니라 상처 입은 나라를 끌어안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진짜 위대함은 자유를 얻은 순간이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겸손을 잃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림절은 바로 이런 절기입니다. 대림절은 “왜 아직입니까?”라고 재촉하는 시간이 아니라 “주님, 주님의 때를 믿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감옥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문제는 그대로 있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겸손히 기다리는 사람을 하나님은 결코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작은 자리에서, 느린 시간 속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자리에서 주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찾아오십니다.
그 찾아오심은 문제를 한순간에 없애는 방식은 아닐지라도 구원과 평강이라는 가장 귀한 선물로 임합니다.
성도 여러분, 올 성탄을 맞이하며 우리 모두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신뢰하며 기다리겠습니다. 크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주님 손 안에 머무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올 성탄을 맞이하며 우리 모두가 겸손으로 기다리는 사람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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