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하나님이 돌아오시는 사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임재가 떠났을 때 사람들은 늘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대표적인 장면이 엘리 제사장 시대에 법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을 때입니다(삼상 4장). 그 소식을 들은 엘리는 충격으로 쓰러져 죽었고, 며느리는 아이를 낳으며 “이가봇”, 즉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자리에는 두려움과 절망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다시 임하시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희망이 싹트며 기쁨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스바냐 3장 14–20절이 바로 그 장면입니다. 앞선 장들에서 스바냐는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백성은 두려움 가운데 있었고, 미래는 어둡게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들어오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갑자기 기쁨의 노래, 회복의 선포가 터져 나옵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까? 성경은 한 문장으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라”(17절)
하나님이 다시 임하시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심판의 그림자는 물러가고, 기쁨과 소망이 새롭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대림절 세 번째 주일은 바로 이 진리를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오셔서 두려움을 거두시고 기쁨을 회복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주님을 다시 깊이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본론 — 하나님은 오늘 스바냐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은혜를 주십니다.
첫째, 우리의 두려움을 없이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5절입니다.
1) 강해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스바냐 3장 15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두려움을 어떻게 몰아내시는지 세 가지 이유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강해
①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 더 이상 심판 아래 있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벌을 제거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큰 두려움은 바벨론의 군대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영적인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형벌을 제거하였다!”
이 말씀이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더 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심판받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착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형벌을 제거하셨기 때문에 두려움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② “네 원수를 쫓아내셨으며” —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원수를 쫓아내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원수는 바벨론 이었지만, 오늘 우리에게 원수는 사탄이고 죄의 세력이며, 우리 마음을 흔드는 두려움과 염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쫓아내셨다.” 미래형이 아니라 이미 하셨다는 선언입니다.
홍해 앞에서 절망하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출애굽기 14:13)
이스라엘이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신 싸우셔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외쳤던 말이 무엇입니까?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삼상 17:47)
하나님이 대신 싸우시는 순간 원수는 이미 무너진 것입니다.
③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 임마누엘의 확증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움이 사라지는 진짜 이유는 문제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선언을 반복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사 41:10)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수 1:9)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 23:4)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인생의 두려움은 환경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할 때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두려움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2) 설명 — 스바냐 시대의 배경과 현실 적용
스바냐 당시의 이스라엘은 정치와 경제가 무너지고, 신앙이 흔들리며, 바벨론 침략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움 속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망하는 것이 끝이 아니다.” “내가 너희 안에 다시 임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두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릴 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3) 예화 — 폭풍 속의 바위
어느 산골 마을에 한 노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은 겨울이면 눈보라가 자주 몰아쳐 집이 흔들릴 때가 많았습니다. 바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두 분의 마음도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집 옆에는 수십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던 커다란 느티나무가 하나 서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나무’라 불렀습니다. 폭풍이 몰아칠 때마다 그 나무가 바람을 막아 주어 마을은 언제나 무사했습니다.
노부부는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폭풍이 두렵지 않은 게 아니오. 다만 우리를 지켜주는 나무가 곁에 있어 마음이 놓일 뿐이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도 폭풍은 찾아옵니다. 문제, 염려, 아픔, 불안… 하지만 우리가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 곁에 주님이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폭풍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에 두려움이 힘을 잃는 것입니다.
4)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무엇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까?
가정의 걱정?
자녀의 문제?
건강에 대한 염려?
경제적인 불안?
주님은 오늘 스바냐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대림절은 문제가 없어지는 절기가 아닙니다. 문제 속으로 오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절기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주님을 다시 모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계시면 두려움은 물러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두려움을 몰아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스바냐 말씀을 통해 주시는 두 번째 은혜는 무엇입니까?
둘째, 우리를 기뻐하시며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7절입니다.
1) 강해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바냐 3장 17절은 스바냐서 전체에서 가장 밝고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앞부분에서는 심판과 어둠이 가득했지만,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마음은 마치 새벽 햇살처럼 환하게 비칩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세 가지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구절입니다.
1) 강해
①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첫 번째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너의 하나님”이라는 표현 안에는 언약의 사랑, 관계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임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분명히 말합니다.
출애굽기 29장 45절에서는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셨고,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오시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면 새 힘이 샘솟습니다.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 이것이 모든 회복의 시작입니다.
②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
두 번째는 하나님이 전능자, 곧 전쟁에서 승리하는 용사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우리를 건지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가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사사기 6장에서 기드온이 연약할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 말씀 한마디로 기드온은 미디안을 이겼습니다.
시편 46편 1절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힘은 환경에서 오지 않습니다. 새 힘은 우리의 성취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생겨나는 힘입니다.
③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 우리를 기뻐하시는 아버지
세 번째는 성경 전체에서도 보기 드문 놀라운 표현입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 아니라 노래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기뻐하신다는 이 표현은 성경에서 가장 강렬한 사랑의 언어입니다.
스가랴 2장 8절에서는
“너희는 내 눈동자같이 귀하다.”하셨고,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며 걱정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보기만 해도 기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15장에서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돌아온 탕자를 비유하시며 하늘 아버지의 기쁨이 어떻게 폭발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양을 찾은 목자는 기뻐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은 이웃을 불러 함께 즐거워합니다. 돌아온 아들을 본 아버지는 달려가 끌어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눈입니다. 우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기뻐하시고 노래하신다”고 선언합니다.
2) 설명 — 이스라엘의 상태가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스바냐 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 있고, 심판을 향해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상태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를 선택했고, 너희를 자녀 삼았기에 내가 너희를 기뻐한다.”
하나님의 기쁨은 환경이 아니라 관계에 근거합니다. 능력이 아니라 신분에 근거합니다. 행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4) 적용 —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나는 하나님께 실망을 드렸을 거야…”
“나는 부족해서 하나님이 나를 참고 계시는 거야…”
“나는 기쁨의 대상이 아니라 걱정거리일 거야…”
그런 생각이 드신다면 오늘 이 말씀 하나를 꼭 붙들기를 바랍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하나님은 여러분을 걱정이 아니라 기쁨의 대상으로 보십니다.
대림절의 기쁨은 환경이 좋아져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입니다.
예배할 때 기쁨을 회복하십시오.
찬양할 때 기쁨을 회복하십시오.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은 예배하는 여러분을 바라보며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쁨 속에서 새 힘을 주시는 전능자가 되어 주십니다. 전능자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 스바냐 말씀을 통해 주시는 세 번째 은혜는 무엇입니까?
셋째, 우리의 상처를 고치시고 회복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강해
18–20절을 보면 회복의 세 가지 약속이 나옵니다.
상한 자를 모으겠다 (18절)
압제하는 자를 징벌하겠다 (19절)
수치와 고난을 명예와 칭찬으로 바꾸겠다 (20절)
20절을 보십시오.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는 바벨론 포로 귀환의 예언이기도 하며, 장차 오실 메시아의 구원을 예표합니다. 이 약속은 신약에서 성취됩니다.
누가복음 4:18절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을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요엘 2장 25절입니다.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잃어버린 것, 상처받은 것, 무너진 것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2) 설명
스바냐의 메시지는 단순한 “힘내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상한 마음을 싸매시고, 흩어진 자들을 다시 모으시고, 수치를 영광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입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저절로 낫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지시면 회복됩니다.
3) 예화
어느 마을에 오래된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여러 번 깨져 금이 갔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을 장인이 그 항아리를 가져와 금으로 접착하여 다시 붙였습니다.
그 항아리는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금이 간 항아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덮어버리는 분이 아니라 그 상처 위에 은혜의 금을 채워 더 귀한 그릇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4) 적용
여러분의 삶에 상처가 남아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상처를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흩어져 버린 가정, 멀어진 관계, 잃어버린 기쁨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흩어진 것을 다시 모으시고, 잃어버린 것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대림절은 바로 그 회복의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 잃어버린 소망을 다시 붙잡는 시간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 현대적 이야기로 마무리
몇 해 전 큰 산불이 지나간 지역에 한 부부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집을 다시 지으려고 살펴보니, 주변은 온통 검게 타 있고 손으로 만질 만한 것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황폐한 땅 한가운데에서 작은 초록색 싹이 돋아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부부는 그 싹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생명은 아무도 막을 수 없어. 여기서 다시 시작되는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대림절은 바로 그 작은 싹을 바라보는 절기입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은 작고 조용한 싹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시고,
우리에게 새 기쁨을 주시고,
상처 난 삶을 회복시키시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오늘도 그 주님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기쁨의 주일에 우리는 스바냐의 노래를 우리의 고백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여러분의 삶 가운데도 이 작은 싹이—곧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다시 자라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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