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박국 3장 17-18절, “비록 그럴지라도 감사하리이다”

신북중앙교회 2025. 11. 16. 07:33

🕊️ 서론현대의 감사 예화

한 중년 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는데, 코로나 이후 손님이 줄어들고, 빚이 쌓여 마음고생이 컸습니다. 게다가 그해에는 가족의 병원비까지 겹쳐 경제적으로 아주 힘든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주일이 다가오자 그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감사할 형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셨지. 지금까지도 굶기지 않으셨고, 가족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잖아.”

그는 그 마음으로 작은 봉투를 정성껏 준비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가진 것은 적지만 제 마음의 감사는 풍성합니다. 올해도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그의 감사는 형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온 감사였습니다. 오늘 본문 속 하박국 선지자도 바로 그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의 고백을 통해 나의 형편이 어떠할 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은혜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 본론

첫째, 감사는 상황이 아니라 신앙의 선택입니다. 17절입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① 성경 강해 (자세한 설명)

하박국이 이 말씀을 할 당시의 시대는 바벨론 침공이 임박한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유다는 죄악이 가득했고, 하나님은 그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바벨론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그 결과 나라가 망하고, 농사는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하박국이 언급한 여섯 가지 부족함무화과, 포도, 감람나무, 밭의 곡식, 우리 안의 양, 외양간의 소이것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먹고 살던 모든 생계의 기반을 말합니다. , 과수, 곡식, 가축, 세 가지 모두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곧 삶 전체가 무너진 절망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단맛이 나는 귀한 과일로, 풍요와 평화를 상징했습니다. (미가 4: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포도나무: 기쁨과 축제의 상징이었습니다. 포도주는 즐거움과 감사의 상징입니다.

감람나무(올리브나무): 기름을 내는 나무로, 등불과 음식, 예배 제사에 꼭 필요했습니다.

밭의 곡식: 사람의 주된 양식입니다.

우리의 양, 외양간의 소: 가축은 부와 노동력, 제사의 제물까지 포함한 생활의 근본이었습니다.

이 여섯 가지가 모두 없다는 말은, 이제는 더 이상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뜻입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이 하나도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놀랍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 감사는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서 나오는 것임을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여전히 주권을 잡고 계신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감사입니다.

② 성경의 예 (비슷한 믿음의 감사)

1️ 욥의 고백을 통해 감사의 고백이 환경이 아니라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욥기 1 21절입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의 감사는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가 아니라, 하나님이 여전히 자신과 함께 계신다는 믿음 때문에 나왔습니다. 그의 신앙은 소유가 아닌 하나님 자신을 붙든 믿음이었습니다.

3️ 사도 바울의 감사도 그렇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 16-18절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바울의 감사는 감옥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감사했습니다.

③ 해설

하박국의 신앙은 현실을 외면한 감사가 아닙니다. “없다, 없다, 없다라고 여섯 번이나 말한 뒤에, 그는 그러나(비록 그럴지라도)”라는 믿음의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감사는 형편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이 아니라, 믿음으로선택하는 자세입니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상황보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봅니다. 이것이 바로 하박국의 감사 신앙입니다.

④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도 무화과나무가 마를 때가 있습니다. 농사가 잘되지 않거나, 건강이 약해지거나, 자녀나 손주 때문에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 그래도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가 믿음의 고백입니다.

감사는 형편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결단입니다. 그 믿음의 감사 위에 하나님은 반드시 새로운 소망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상황이나 환경을 뛰어 넘어 범사에 감사가 넘치는 여러분 모두의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둘째, 감사는 하나님 자신 때문에 드립니다.

① 성경 강해

여러분, 하박국 선지자는 1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입니다.  하박국의 기쁨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온 기쁨이었습니다.

그는 열매가 없어도, 밭에 먹을 것이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전히 그의 하나님, 그의 구원의 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여호와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때문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하박국은나는 상황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기뻐합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의 감사입니다. 감사는 물질이 많을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이 좋고, 일이 잘 될 때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시편 16편에서주는 나의 산업과 잔의 소득이시니,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 아름답도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재산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기업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 세상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몫이요, 내 소득이요, 내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이런 믿음의 감사가 필요합니다. 요즘 세상 참 어렵습니다. 농사도 힘들고, 수입도 줄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가진 것은 적지만 여전히 저의 구원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우리 마음에 진짜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 기쁨은 환경이 줄 수 없는 기쁨이고,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감사의 이유가 소유나 성취에 있으면, 상황이 변할 때 그 감사도 사라집니다. 하지만 감사의 이유가 하나님 자신에게 있으면, 그 감사는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록 가진 것이 적어도,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 하나님을 붙들고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하박국의 감사는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믿느냐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라면, 그 어떤 흉년에도,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 고백이 오늘 우리 입술에도, 우리의 삶 속에도 울려 퍼지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감사는 절망을 소망으로 바꿉니다.

① 성경 강해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성도 여러분, 놀라운 것은 하박국의 형편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맺힌 것도 아니고, 밭에 곡식이 자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불평이 찬송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변했습니다.

하박국 1 2절을 보면 선지자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탄식과 불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3장에 와서는 찬송으로 끝이 납니다. 이게 바로 감사의 능력입니다.

감사는 현실을 당장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그 현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환경은 여전하지만, 감사하는 사람의 눈에는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보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믿음의 감사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온몸에 피가 나고, 손과 발은 착고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사도행전 16 25절입니다.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성도 여러분, 그때는 밤이었습니다. 육신은 아프고, 앞날은 캄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리고, 간수가 회개하며 온 가족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감사는 바로 이런 힘이 있습니다. 감사는 문제를 없애지는 못하지만, 그 문제를 하나님의 능력의 자리로 바꿔 놓습니다. 감사는 절망의 문을 열어 소망의 길을 내는 믿음의 열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감옥 같은 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농사도 안되고, 자녀가 속을 썩이고, 건강이 나빠질 때, 그때마다 하박국처럼, 바울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지금은 어렵지만, 여전히 주님은 제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이 새 일을 행하실 줄 믿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에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이 임하게 됩니다. 감사는 절망을 뚫고 소망을 보게 하는 믿음의 눈을 열어 줍니다.

저는 예전에 한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농사를 짓는데, 해마다 고생이 많았습니다. 한 해는 태풍이 오고, 다음 해에는 가뭄이 오고, 그래서 늘 흉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감사해야지요. 땅이 살아 있고, 내 몸이 아직 건강하잖아요. 내년엔 하나님이 또 도와주시겠지요.”

그분의 얼굴에는 절망이 없었습니다. 그분의 입술에는 믿음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감사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살리고,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실 길을 여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닙니다. 감사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아직 응답이 없을 때도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감사의 고백을 통하여 새 일을 행하시고, 놀라운 변화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말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한마디가 우리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통로가 됩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감사가 소망의 문을 여는 믿음의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박국 선지자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는 절망이 아니라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왜입니까? 그의 감사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뿌리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믿음의 감사는 언제나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왔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리이다”(요나 2:9)라고 고백하자, 하나님은 큰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감사는 상황을 바꾸는 능력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올 한 해 농사가 잘되었든, 그렇지 않았든, 건강이 좋든, 몸이 약하든, 감사는 여전히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열매가 없어도 주님이 계시니 감사합니다.”

이 고백이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을 소망으로, 눈물을 찬송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추수감사절은 곡식이 많아서 드리는 절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심을 감사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삶에 남은 것이 많든 적든, 하박국처럼, 다윗처럼, 바울처럼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참된 감사의 예배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