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전서 4:6-21
제목: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흔히 성공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돈이 많거나, 명예가 있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는 성공은 세상과 다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복음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평생 185개국 이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대통령들을 만나 조언한 목회자였습니다.
세상적으로도 유명했지만, 그의 삶에서 가장 감동적인 점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낮추고 오직 예수만 높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노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유명한 목사로 보지만, 나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전하는 한 명의 죄인일 뿐입니다.”
그는 세상 눈으로 보면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끝까지 그리스도만 자랑했습니다. 세상에서 자랑할 것이 많아도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같은 마음으로 고린도 교회를 향해 말합니다. “세상 기준으로 자랑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본받으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신앙을 돌아보고,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사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세상 기준이 아닌 그리스도의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6절)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사람을 높이고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말씀 밖으로 넘어간다’는 말은 성경이 말하는 기준을 벗어나서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목회자나 사람을 높이며 자랑하는 문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7절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지식, 재물, 건강, 신앙은—모두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왜 마치 내가 잘나서 얻은 것처럼 자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성경 예화: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후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았습니다. 광야는 농사짓기 어렵고 먹을 것이 부족한 곳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들은 신발이 닳지 않게 보호받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길을 안내받으며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유지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기 전에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 17절입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풍요로워지면 교만해질까 염려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쉽게 풀이:
우리는 살면서 열심히 일해 집을 사고, 자녀를 가르치고, 가정을 꾸리면 “내가 노력해서 이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일할 건강과 기회를 주신 분, 머리와 손을 쓰는 지혜조차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가진 것 때문에 교만해지지 말고, 가진 것이 적어도 불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왔다는 것을 알면 감사와 겸손이 저절로 나옵니다.
적용:
농사에서 풍년이 들었을 때, “올해는 내가 농사를 잘 지어서 그렇다”가 아니라,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사업, 직장에서 얻은 수입도 “내 힘으로 번 돈”이 아니라, 일할 기회와 건강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잘 자라고, 후손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내가 교회 나와 예배드릴 수 있는 것도 믿음을 주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잘될 때 교만하지 말고, 어려울 때 불평하지 말고, 언제나 감사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입니다.
둘째, 그리스도 때문에 겸손하게 섬겨야 합니다. 10절입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고린도 성도들은 자신들이 이미 풍족하고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반대로 자신을 미련하고 약한 자로 표현합니다. 즉, 사도의 길은 영광이 아니라 고난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11절입니다.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바울은 복음을 위해 떠돌며 굶주리고, 매 맞고, 집 없이 다녔습니다. 세상 눈에는 초라한 인생이지만, 그리스도를 따르기에 선택한 길입니다.
성경 예화:
사도행전 5장에서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억울하고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사도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는 것이 오히려 영광이었습니다. 이처럼 바울 역시 복음 때문에 매를 맞고 떠돌아다녔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쉽게 풀이:
우리도 살다 보면 믿음 때문에 손해 보는 순간이 있습니다. 젊을 때 일 안 하고 주일 성수한 것, 가족의 반대를 견디고 교회 나온 것, 시간과 물질을 주님께 드린 것, 이런 것들이 세상 눈에는 손해 같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도 헛되지 않고 다 상급으로 쌓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억울해하지 마시고, “하늘의 상급이 있다”는 믿음으로 기쁘게 걸어가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의 신앙의 길을 다 보고 계시고, 그 믿음을 칭찬하시며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적용:
이번 한 주간도, 작은 일이라도 주님께 드리고, 가족에게 하나님 은혜를 전하며, 하루를 마칠 때 감사 제목을 떠올리는 믿음의 연습을 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눈물과 헌신을 기억하시고,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고 칭찬하실 날이 반드시 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서로를 세워야 합니다. 15절입니다.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가르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을 단순한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라 영적인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처음 전해 그들을 영적으로 태어나게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그들의 신앙의 첫걸음을 도와준 영적 부모였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과 관심으로 자라듯, 신앙생활도 누군가의 사랑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그런 사랑으로 돌본 ‘영적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가르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며 성장하도록 양육하는 책임을 가졌습니다.
적용:
우리도 교회에서 서로를 향해 이렇게 부모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교회에서 누구의 신앙을 돌보고 있나?” “내가 기도하며 챙겨줄 사람은 누구인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16절입니다.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 한 것은 자신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모범으로서 자신을 제시한 것입니다. 즉,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듯, 너희도 나를 따라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의미입니다.
신앙은 말로만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따라 하기보다 행동을 따라 하듯, 교인들도 신앙의 본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바울은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적용:
나도 누군가에게 신앙의 본이 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자녀나 이웃이 나를 통해 예수님을 보고 있는가?” 말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20절입니다.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 교회에는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솜씨나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된 삶에서 드러난다고 강조합니다. ‘능력’은 단순한 기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삶이 변화되는 힘입니다.
예를 들어, 거친 성격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온유해지고, 미워하던 사람을 용서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교회는 말 잘하는 곳이 아니라, 삶이 변화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적용:
이번 주,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내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돌아보십시오. 말로만 신앙을 전하는 게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행동으로 신앙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경 예화: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은 섬김의 본보기입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것은 노예나 하인이 하는 일이었고, 손님에게는 겸손한 사랑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스스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심으로써, “신앙은 지식이나 권위가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삶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즉, 주님은 ‘나는 너희의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를 섬겼으니, 너희도 서로 섬기라’고 실제 모습으로 가르치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풀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혼내지만, 그 마음은 아버지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진짜 신앙은 지식이나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서로를 돌보고, 필요한 일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실제적인 힘입니다.
쉽게 말하면: 말보다 행동이 신앙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서, 남을 위해 작은 일을 하는 삶이 진짜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작은 일이라도 사랑으로 섬기는 행동이 신앙의 본입니다. 말로만 ‘사랑하라’ 하지 말고,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세상 눈으로 보면 초라하고 손해 보는 삶도 그리스도를 위해 살 때 가장 귀한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굶주리고, 매를 맞고, 떠돌았지만,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던 또 다른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손양원 목사님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속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섬기고,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보다 하나님과 이웃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순교를 겪으면서도 원수를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가셨습니다. 세상 눈에는 슬픔과 손해처럼 보였지만, 그의 삶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가 드러난 귀한 삶이었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바울이 강조한 것처럼,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과 섬김으로 서로를 세우는 삶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는 작은 섬김과 헌신, 사랑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열매로 돌아옵니다.
적용:
남은 한주도, 누군가를 위해 작은 섬김 하나라도 실천하며,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고백하십시오. 세상이 보기에 손해처럼 보여도, 그리스도를 위해 살 때 우리의 삶은 가장 귀하고 영광스러운 삶이 됩니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살아갑니다. 세상은 우리의 헌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이 한 주간도 주님 때문에 섬기고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삶에서 신앙의 본을 보이며 하나님과 교회에 영광돌리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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