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예화 – 끝까지 달려간 존 스티븐 아쿠아리의 이야기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서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쿠아리 라는 선수가 출전했습니다. 그는 경기 중반, 미끄러운 길에서 넘어지며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무릎과 어깨가 찢어지고 다리가 탈구되어 더 이상 제대로 달릴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기를 포기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붕대를 감은 채, 절뚝거리며 결승선을 향해 걸었습니다. 밤이 되어 경기장이 거의 비어 있을 무렵, 그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메달이 불가능했는데, 왜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나라는 나를 이 경주에 출발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승선까지 완주하기 위해 보냈기 때문입니다.”
존 스티븐 아쿠아리는 자신을 경기에 세우신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단지 시작선에 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상과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마음이 오늘 본문 속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습니다. 즉, 내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붙잡으셨다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달려가는 인생의 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이 자리에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결승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은혜’라는 주제로 바울의 고백을 통해 우리 신앙의 길을 돌아보려 합니다.
✝️ 본론
첫째, 하나님이 먼저 붙잡아주신 은혜입니다. (12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바울은 자신을 “강하게 붙잡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신앙 고백을 아주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나는 이미 얻은 것이 아닙니다. 아직 완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고백 속에는 겸손한 신앙의 자세가 담겨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어느 정도 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을 “아직도 달려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가 예수께 잡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1. “잡힌 바 되었다” — 예수께 먼저 붙잡힌 인생
여기서 “잡힌 바 되었다”는 말은 ‘강하게 붙잡히다, 놓치지 않도록 움켜쥐다’라는 뜻입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바울을 강하게 붙잡으셨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찾아오신 은혜의 결과입니다.
✨ 예화: 길을 잃은 어린아이와 아버지의 손
어느 날, 한 아버지와 어린아이가 시장에 갔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 잠시 물건을 보느라 손을 놓친 순간, 그만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멀리서 아이를 발견하고, 단숨에 달려와 아이의 손을 꽉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제 아빠가 너를 잡았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절대 놓지 않겠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꽉 붙잡은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붙잡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들릴 때에도, 넘어질 때에도, 여전히 믿음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 2.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 — 붙잡히는 은혜
바울은 본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었고, 열심히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9장에 보면,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십니다. 하늘에서 큰 빛이 비추고, 바울은 땅에 엎드립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이 사건이 바로 예수께 붙잡힌 순간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바울을 찾아와 붙잡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 이후로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던 사람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려던 사람에서, 교회를 세우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님이 먼저 붙잡으신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예화: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 목자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한 목자가 있었습니다. 양 한 마리가 산으로 올라가 길을 잃었습니다.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목자는 지팡이를 들고 어두운 산속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돌길에 발이 다치고, 가시에 찔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절벽 끝에서 떨고 있는 양을 발견하자, 목자는 자신이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 양을 안고 내려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목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그 길 잃은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를 품에 안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 3.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붙잡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 이유를 따라 살아가겠습니다.”
즉, 붙잡힌 목적을 ‘붙잡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으신 것은 단지 구원받게 하려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분의 뜻,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평생 동안, 감옥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 적용: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에, 혹은 아플 때, 혹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셨고, 그때 우리는 그분의 손에 붙잡혔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는 것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우리의 결심보다 하나님의 손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에, 우리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눈물 속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 결론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의 출발점은 ‘내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먼저 붙잡으신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깨닫는 순간, 우리 마음에는 감사가 생기고, 삶의 목적은 분명해집니다.
“주님, 이제는 제가 주님이 붙잡으신 이유를 따라 살겠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신앙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라. (13절)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갇혀 있고, 인생의 노년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말합니다.
“나는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도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미 위대한 사도로, 복음을 전하며 수많은 교회를 세웠던 바울이 여전히 자신을 ‘달려가는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고백합니다.
📖 1. “뒤에 있는 것”의 의미
여기서 “뒤에 있는 것”은 단지 과거의 실패만이 아니라, 과거의 성공과 업적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바울에게도 자랑할 만한 과거가 많았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최고의 학문, 유대교의 율법을 철저히 지킨 의로움,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한 열정—하지만 그는 그것을 다 뒤로 놓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즉,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은 과거가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내 인생의 방향은 뒤가 아니라, 앞입니다.”
📖 2. “잊어버리고” — 과거를 내려놓는 결단
“잊어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기억에서 지운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잊음’은 더 이상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도 이 표현을 쓰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잊으셨다는 말은 그분의 기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 죄를 더 이상 우리에게 문제 삼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인생의 과거를 “잊어야” 합니다. 죄와 실패, 상처와 후회에 묶여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또한 과거의 성공과 자랑에 머물러도 신앙은 멈춰버립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라고 고백합니다.
🪞예화: 뒤를 보며 운전하는 사람
어느 운전 교관이 초보 운전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전할 때 백미러는 보되, 너무 오래 보지 마세요. 왜냐하면 운전은 앞으로 가는 것이지, 뒤를 보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한 초보 운전자가 백미러에 너무 집중하다가 앞을 보지 못해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그때 교관이 말했습니다.
“백미러는 참고용이지, 방향은 앞을 향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교훈을 얻기 위해서이지, 거기에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앞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 3. 성경 속 “과거를 잊은 사람들”
1️⃣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높이셨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41장 51절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요셉은 과거의 상처를 붙잡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2️⃣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과거의 부끄러움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 사람입니다.
🌾 적용: 나를 붙잡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주님이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잊어야 할 과거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은 일, 내가 잘못했던 실수, 내 힘으로도 용서하기 어려운 기억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3장 18-19절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하나님은 과거가 아닌 “새 일”을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의 시선을 과거에서 미래로, 상처에서 소망으로 옮겨야 합니다.
🙏 결론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붙잡고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제 마음을 과거에 묶어두지 마시고, 주님이 준비하신 내일을 향해 달려가게 하소서.”
그럴 때 우리의 인생에도 하나님이 새롭게 여시는 “은혜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셋째,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믿음입니다. (14절)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 푯대가 분명한 인생
사도 바울은 신앙의 길을 ‘달려가는 경주’로 비유했습니다. 그는 인생을 달리되, 아무 방향으로나 달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주신 푯대, 즉 목표가 있었습니다.
이 “푯대”라는 단어는 ‘경주자가 끝까지 바라보는 결승선’을 뜻합니다. 달리기 선수는 눈앞의 관중도, 옆의 경쟁자도 보지 않습니다. 오직 푯대만 바라보고 달립니다.
바울의 푯대는 세상적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에서도, 고난 중에도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하늘의 상, 곧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달려갑니다.”
그는 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 하늘의 결승선을 향해 달려갔던 사람입니다.
2.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믿음
마라톤을 달리다 보면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선이 목표를 향해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인생에도 넘어짐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고, 감옥에 갇히고, 배가 파선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합니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믿음이 다시 세워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낙심 가운데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 예화 – 끝까지 걸어간 마라톤 할머니
한 마라톤 대회에 70세가 넘은 할머니가 참가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 연세에 어떻게 마라톤을 뛰시나?” 하며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처럼 빨리 뛰지 못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기 결승선에서 손 흔들며 기다리시는 예수님이 계시니까요.”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비록 할머니는 가장 늦게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그 누구보다 환한 얼굴로 “감사합니다, 주님”을 외쳤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신앙의 길을 걸을 때 넘어지고 지칠 때가 있지만, 결승선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세상의 푯대는 흔들리지만, 하늘의 푯대 —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 걸음 하나하나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3. 하늘의 상을 향해 달려가는 믿음
바울은 마지막까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입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그의 인생의 결승선에는 의의 면류관, 곧 주님께서 직접 씌워주시는 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수고하며, 눈물로 씨를 뿌릴지라도 하늘의 상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푯대는 바람에 흔들리지만, 하늘의 푯대는 변하지 않습니다.
🌾 적용과 도전
여러분, 혹시 지금 달리기 힘든 분 계십니까? 몸이 지치고 마음이 상해 포기하고 싶은 분 계십니까?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멈추지 말아라. 내가 먼저 너를 붙잡았으니, 이제는 나를 향해 달려가라.”
우리의 시작도 은혜였고, 우리의 끝도 은혜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푯대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는 믿음으로 하늘의 푯대를 향해 함께 달려가시길 소망합니다.
🔶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 “끝까지 달려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신앙 여정을 돌아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의 길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이미 잡은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신앙의 출발점은 내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먼저 붙잡아주신 은혜였습니다. 이 은혜가 있었기에 바울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도,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놓지 않는 것도 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붙잡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나를 향해 달려가라. 너의 걸음이 느려도 괜찮다. 내가 너를 붙잡고 있으니, 끝까지 함께 가겠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넘어질 때도, 지칠 때도, 방향이 예수님을 향해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은혜의 길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하늘의 푯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우리 인생의 시작이시며, 결승선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제는 네가 나와 함께 영원히 쉬어라.”
이 믿음의 고백으로 오늘도 은혜의 길, 믿음의 길, 하늘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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