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장 10-15절
“하나님 나라의 모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집을 지을 때 목수는 맨 먼저 톱을 드는 것이 아니라 ‘기준자’를 댑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눈대중은 처음엔 빨라 보이지만, 1mm의 오차가 모여 문이 비틀어지고 지붕이 틀어집니다. 한 목수가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은 눈으로 짓지 않고 기준으로 짓는 거란다. 처음 1mm가 나중엔 1m가 된다.” 여러분, 눈으로 보기에 좋은 집이 아니라, 기준 위에 세운 집이 오래 남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 말씀 기준 위에 세워야 영원히 남습니다. 기분과 형편이 기준이 되면 마음이 흔들릴 때 믿음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을 ‘기준자’로 대고,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 위에 ‘기초’를 놓으면, 환난의 바람이 불어도 끝까지 반듯하게 서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재고, 무엇 위에 세우고 있습니까? 겉모양보다 보이지 않는 기준과 기초가 우리의 내일을 결정합니다. 처음 기초를 똑바로 놓아야, 지을 때도 마칠 때도 똑바릅니다.
바로 이 점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가르칩니다.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요, 그 위에 무엇으로 짓는지 “그 날의 불이”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3장 10-15절 말씀을 통해, 기초와 재료, 그리고 마지막 불시험 앞에서 남는 신앙이 무엇인지 함께 살피겠습니다.
첫째,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입니다. (10-11절)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신앙의 집은 예수님을 바닥판(기초)으로 삼을 때만 끝까지 안전합니다. 왜 예수님이 기초입니까? 집을 지을 때 바닥(기초)이 약하면, 위에 아무리 멋진 벽과 지붕을 올려도 비바람에 금이 가고 무너집니다. 바울은 “내가 터를 닦았다”고 하지만, 그 터의 내용은 자기 실력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건물이 아무리 화려해도 기초가 흔들리면 무너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기초, 우리의 구원의 기초는 사람이나 세상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혹은 작고 초라해 보여도,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기초가 어디 위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내 신앙이 50년, 60년 된 오래된 신앙이든, 이제 믿음을 시작한 초신자이든, 든든함을 결정하는 건 오직 예수님입니다.
쉽게 말해, 건물이 오래되었든 새로 지었든, 땅 기초가 단단한 반석 위에 있으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있으면 금방 흔들립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오래 믿었든, 이제 막 믿기 시작했든, 예수님이라는 반석 위에 서 있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내가 교회 다닌 세월이 길든 짧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 위에 서 있느냐, 그분을 붙잡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예수님이 기초라면 든든합니다. 신앙이 오래되었든 짧든, 예수님을 붙들면 끝까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화: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7:24-27). 폭풍이 몰아칠 때 모래 위 집은 무너졌지만, 반석 위 집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석은 곧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든든하려면, 어떤 것도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적용: 여러분, 우리가 평생 교회 다니며 쌓아온 모든 것도, 결국 기초가 예수님 위에 있지 않으면 다 무너집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가? 그분이 내 구원의 기초인가?”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매 주일마다 교회를 나오고 매일 기도하지만 결국 마음의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모래 위에 집 지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로 하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고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둘째, 무엇으로 집을 지어 올리는 것입니까? (12-13절)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예수님이라는 기초 위에, ‘불에도 남는 것’으로 지어야 합니다. 겉보기 좋다고 다 남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단단한 콘크리트 기초입니다. 아무리 멋진 집도 이 기초 위가 아니면 무너집니다.
집 재료를 두 가지로 고를 수 있습니다.
금·은·보석: 비싸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불을 지나도 남는 재료입니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가치 있는 것들입니다.
어떤 것들이 금, 은, 보석에 해당하는 신앙입니까?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순종, 눈에 안 보여도 끝까지 베푸는 사랑, 손해 보더라도 정직을 지키는 믿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닌 은밀한 헌신 같은 것입니다.
나무·풀·지푸라기: 겉으론 커 보이고 빨리 쌓을 수 있지만, 불 나면 흔적이 없습니다.
그럼 어떤 것들이 나무, 풀, 지푸라기에 해당하는 신앙입니까?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봉사, 성과·숫자 집착, 비교·자랑, 형식만 남은 신앙생활입니다.
왜 불이 필요할까요?
불은 하나님의 공정한 검증입니다. 그날(주께서 드러내시는 날)에 우리의 수고가 무엇으로 지어졌는지 밝혀집니다. ‘금·은’은 불을 통과하며 더 순수해지고 빛납니다. 반대로, 지푸라기는 타서 사라집니다. 즉, 하나님께서 가치로 인정하시는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뜻합니다. 그 불 앞에서 금과 은은 더 빛나지만, 풀과 지푸라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이라는 단단한 기초 위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말씀 순종과 사랑의 헌신으로 집을 지으십시오. 그것만이 불을 지나도 영원히 남습니다
예화
구약에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생각해봅시다(창세기 4장). 가인은 형식적으로 제물을 드렸지만, 아벨은 믿음으로 가장 좋은 것을 드렸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체면, 의무, 관습 중심으로 이만하면 되었지 라는 태로로 드렸습니다. 아벨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었다면, 가인은 자기 중심, 자기 만족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외형보다 예배자의 마음(믿음, 태도, 동기)을 보시며, 그에 따라 받으시거나 거절하십니다. 가인은 “형식”과 “자기 방식”으로 드렸고, 아벨은 “믿음”으로 “가장 좋은 것(첫 것과 기름진 것)”을 드렸습니다. 같은 예배, 같은 교회라도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보다 ‘어떻게·왜’가 결정적입니다.
적용: 여러분, 우리가 드린 예배, 기도, 봉사, 그리고 이웃을 사랑한 작은 일까지도 하나님 앞에 금·은·보석처럼 남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 일은 나무와 풀처럼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야 합니다.
같은 예배라도 하나님은 예배자의 믿음과 동기를 보십니다. 아벨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여 첫 것과 최선을 드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드릴 때 그 예배가 받아들여집니다.
셋째, 불시험을 통과한 상급의 집입니다. (14-15절)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성경 강해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상급은 삶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불 앞에서 드러납니다. 불은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남는 것(말씀 순종, 사랑, 진실한 헌신)은 상급이 됩니다. 타버리는 것(사람의 칭찬을 위한 행위, 형식, 자기 영광)은 상급을 잃고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두 종류의 봉사가 있습니다. 한 봉사자는 사진 찍고 게시하며 칭찬을 기대했습니다. 다른 봉사자는 기록도 남기지 않고 꾸준히 어르신들을 돌봤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첫 봉사는 사라졌고, 둘째 봉사는 그 지역의 관계망과 삶의 변화로 계속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람의 박수는 불 앞에서 타기 쉽습니다. 사랑으로 드린 작은 충성은 불을 지나 더 빛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구원 자체는 잃지 않습니다. 다만 “불 가운데서 나온 사람처럼” 가까스로 남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남는 것은 상급이 되고, 사라지면 부끄러움을 당하지만, 그래도 구원은 잃지 않습니다.
금은 불을 지나며 잡물이 제거되어 순도가 올라갑니다. 불은 금을 파괴하지 않고 더 순수하게 만듭니다. 주님의 검증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을 드러내고 순도를 높이려는 자비의 과정입니다.
예화
노아의 방주를 생각해보십시오(창세기 6장).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죄로 가득 차자 홍수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노아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말씀대로 나무를 깎고, 널빤지를 이어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불”을 말합니다. 불은 우리 인생의 신앙을 시험하는 도구입니다. 마치 홍수가 노아 시대에 사람들을 시험한 것처럼, 불은 우리의 신앙을 시험합니다.
풀과 지푸라기로 만든 집은 불에 다 타 없어집니다. 그러나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은 불을 지나도 남습니다. 노아의 방주처럼, 하나님 말씀 위에 세운 신앙의 집만이 마지막 심판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적용: 즉, 노아의 방주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에 순종한 집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 머물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지을 때, 어떤 시험이나 심판이 와도 끝까지 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예배, 기도, 작은 봉사라도 말씀 따라 한 것은 불시험을 통과합니다. 그러나 사람 눈에만 보이려고 한 일은 다 사라집니다. 노아가 말씀 따라 방주를 지었듯이, 우리도 매일매일 말씀 붙들고 순종하는 삶을 지어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 집이 무엇으로 지어졌는지는 마지막 날 불을 만나면 드러납니다.
한 건축가가 있었습니다. 주인이 그에게 “최고의 집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건축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와 자재에는 값싼 것을 쓰고, 겉모습만 번듯하게 꾸몄습니다. 시간이 흘러 집이 완성되자, 주인은 그 집을 건축가에게 선물로 주며 “이제 당신이 그 집에서 살라”고 말했습니다. 건축가는 그제야 후회했습니다. 자기 손으로 부실하게 지은 집에서 평생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쌓아온 신앙의 집은 언젠가 우리가 살아야 할 영원한 집이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사랑으로 지은 집은 영원히 남아 우리에게 상급이 되지만, 겉모습만 꾸민 신앙은 마지막 날 부끄러움을 남기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4-15절입니다.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상급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마태복음 7장 24-25절입니다.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 말씀 위에 세운 삶은 어떤 시험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입니다.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 노아가 믿음으로 지은 방주가 홍수 심판을 통과한 것처럼, 우리도 말씀 위에 지은 신앙의 집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따라서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짓고 있는 신앙의 집은 언젠가 영원히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말씀 순종과 사랑으로 지은 집만이 하나님 앞에 영원히 남습니다.
오늘 하루하루를 “영원한 집을 지어가는 건축자”로 살아갑시다. 그리하면 마지막 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하시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 집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여러분 안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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