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장 1-9절
“하나님의 동역자들”
어느 시골 마을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이 농부는 밭을 갈 때 늘 소 한 마리와 함께 했습니다. 농부 혼자서는 큰 밭을 갈 수 없지만, 소와 함께 하면 힘든 밭도 갈 수 있었습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소는 힘을 내어 밭을 갈고, 하나님께서 햇볕과 비를 주셔서 농작물이 자랍니다.
성경안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동역하여 큰 역사가 있었음을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해서 아말렉과 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변변한 전쟁 물자가 없는 이스라엘은 겨우 겨우 싸움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이때 모세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합니다.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데, 손이 높이 들렸을 때는 이스라엘이 이기는 듯하다가 피곤하여 팔이 내려가면 이스라엘이 불리해집니다. 이 모습을 본 아론과 훌이 산에 올라가 양 옆에서 모세의 팔을 붙듭니다. 이렇게 모세와 아론과 훌이 서로 동역하여 마침내 아말렉을 물리치게 됩니다. 싸우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기도를 돕는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우리가 혼자 사는 것 같아도, 사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역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지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7절입니다.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 여기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자체로는 완전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씨를 심는 농부도, 물 주는 농부도 중요한 일을 하지만, 그 힘만으로는 열매를 만들 수 없습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서 열매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햇빛, 비, 온도, 흙의 영양분 모두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도, 물을 주어도, 햇볕과 비가 없으면 싹이 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 생활과 교회 사역도 사람의 힘만으로는 자라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열어주시고, 은혜로 자라게 하셔야 믿음이 굳건해집니다.
시골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김을 매도,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고 햇볕이 비치지 않으면 싹은 절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농부의 노력은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자연의 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사역이나 신앙생활에서도, 우리가 열심히 봉사하고 전도하고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셔야 열매가 맺힙니다.
성경 예화: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이 빌립보에 복음을 전할 때, 자주 장사 ‘루디아’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셨다”(행 16:14)고 합니다. 말씀을 전한 것은 바울이었지만, 마음을 연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라는 말씀의 실제 모습입니다.
적용: 우리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 일을 돕거나, 기도할 때 “내가 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여러분, 다 함께 이렇게 고백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내가 한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우리는 교만해지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며 하나님은 더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채워주십니다. 그런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우리는 각자 맡은 사명이 다릅니다. 6절입니다.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린도전서 3장 6절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다양한 역할이 있지만, 그 목적은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나는 심었고”
→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처음 복음을 전했습니다. 씨앗을 심는 사람처럼 ‘기초를 놓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 아볼로는 바울이 떠난 뒤에 그 교회에 와서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을 세워주었습니다. 물을 주는 농부처럼 ‘이미 심어진 씨앗을 잘 자라게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 씨앗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십니다.
역할은 다르지만 중요성은 같습니다. 심는 사람이 없으면 시작이 없고, 물 주는 사람이 없으면 자라지 않습니다. 어떤 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게 아닙니다. 모두가 똑같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입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서로 비교하거나 다투지 않았습니다. “내가 한 일이 더 크다”가 아니라 “우리는 같은 주인을 섬기는 동역자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마을에서 벼농사를 지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에는 기계로 농사를 짓기에 사람이 많이 필요치는 않지만 불과 2-30년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모를 심고, 어떤 사람은 논에 물을 대고, 어떤 사람은 잡초를 뽑습니다. 모심기만 하고 물을 대지 않으면 벼는 마르고, 물만 주고 모를 심지 않으면 벼는 없습니다. 각자 하는 일은 달라도, 가을에 풍성한 추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교회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경쟁한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일을 맡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심는 사람도 필요하고, 물 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어떤 분은 기도로, 어떤 분은 봉사로, 어떤 분은 격려로 섬깁니다. 기도만 하거나 봉사만 하면 균형이 잡히지 않습니다. 기도하는자 봉사하는자 격려하고 위로하는 자가 동일하게 존재해야 합니다.
성경 예화: 사무엘하나 역대상을 읽어보면,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반대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반대하지만 낙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무조건 반대하신 것이 아니라 다윗의 아들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하는 이유는 역대상 22장 8절에서 밝히는 것처럼, 다윗이 많은 피를 흘려 가며 전쟁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 하십니다. 대신 다윗에게 한 아들이 태어날 것인데 이름을 솔로몬이라 할 것이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지을 것이라 약속하셨고, 다윗의 대가 끊기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것을 돕기 위해 수많은 재료들을 준비합니다. 나중에 솔로몬이 그 재료들로 성전을 지었는데 다 쓰고 남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성전을 준비하는 아버지 다윗과, 성전을 완성하는 자 솔로몬은 두 역할이 달랐지만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동역자입니다.
적용: 연로하신 성도님들은 예전처럼 몸으로 많이 못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와 격려는 여전히 강력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심는 사람, 물 주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모두를 귀하게 쓰십니다. 내가 이런 몸으로 무엇을 하겠느냐 탄식하지 마시고, 오히려 기도에 집중할 시간이 많아 졌음을 감사하시고 교회를 위해, 목회자를 위해, 자녀와 자손들을 위해, 또 국내에 많은 어려움 당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며 나라가 부흥합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리를 소망합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밭과 집입니다. 9절입니다.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린도전서 3장 9절은 우리의 신분과 주인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아볼로 같은 사역자들을 말하지만, 넓게는 모든 성도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리는 종’으로만 대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 밭은 주인의 소유입니다. 농부가 어떤 씨를 심을지, 어떻게 물을 줄지, 언제 추수할지를 결정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밭이기에, 우리 삶의 방향과 목적은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하나님의 집이니라”
→ 집도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은 집을 짓고, 고치고, 보호합니다. 하나님의 집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와 관리, 그리고 사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밭은 주인의 손길이 닿아야 기름지게 됩니다. 버려두면 잡초가 무성하고, 돌이 많아져서 아무것도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인이 부지런히 갈고, 거름을 주고, 김을 매면 그 밭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가꾸실 때만 좋은 열매가 맺힙니다.
농부의 밭은 농부의 소유입니다. 그 밭에 무엇을 심을지, 어떻게 가꿀지 농부가 결정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으시고, 가꾸시고, 추수하십니다.
성경 예화: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 하셨고, 우리를 가지라 하셨습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떨어져 있으면 말라 죽습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께 붙어 있을 때만 생명과 열매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5절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됨을 말씀하십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하나님은 우리를 ‘세입자’로가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주인이 책임지고 돌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의 밭이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은혜를 잘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이니 더럽히지 말고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우리는 각자 맡은 사명이 다르지만 하나님 안에서 함께 일하는 동역자입니다. 둘째, 우리의 수고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집입니다.
농사도 그렇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 내내 잡초를 뽑고 물을 주어도, 하늘이 비를 주시지 않으면, 해가 따뜻하게 비추지 않으면 농사는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하늘을 보며 기도합니다. “올해도 잘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믿음과 교회 사역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봉사하고, 서로를 세워주지만, 마지막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랑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겸손히 주님 손에 붙들린 동역자로 살아야 합니다.
올해 농사도 끝까지 농부가 돌보듯, 하나님도 우리 인생을 끝까지 책임지시고, 마지막 날 추수의 기쁨을 우리와 함께 나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밭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각자 맡은 자리에서 기쁨으로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됩시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우리 삶에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각자의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고,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열매를 맺게 하시고, 마지막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주실 것입니다. 이런 칭찬을 듣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이 땅에서 누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히브리서 10장 24-25절,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 (0) | 2025.10.28 |
|---|---|
| 고린도전서 3장 10-15절 “하나님 나라의 모형” (0) | 2025.10.24 |
| 고린도전서 2장 6-16절, "성령으로 보이셨다" (0) | 2025.10.14 |
| 이사야 41장 8-13절, "내가 너를 도우리라" (0) | 2025.10.12 |
| 사도행전 2장 42-47절,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자" (1) | 2025.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