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헤미야 8장 1-12절,
"말씀을 사모하는 백성"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사랑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다윗일 것입니다. 그는 왕이기 전에 한 명의 목동으로 들판에서 양을 치던 시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10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
다윗은 권력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가리켜 “내 마음에 합한 사람”(행 13:22)이라 부르셨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말씀으로 새로워지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시대, 마틴 루터가 성경을 새롭게 읽고 깨닫았을 때 유럽 교회가 말씀 중심으로 새로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깨닫은 말씀을 독일어 성경으로 번역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세기 말, 선교사들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전했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나라가 변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성경 말씀을 붙잡은 신앙인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한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나라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로 그런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섰습니다. 성벽을 다 세운 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건물 꾸미기가 아니라 말씀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 말씀을 사모하는 백성의 세 가지 특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첫째, 말씀을 사모하는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한마음으로 모입니다. 1절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강해
본문 1절을 보면,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고 기록합니다. 성벽 재건이 끝난 날, 백성들은 각자 집에서 쉬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한마음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오라고 요청합니다. 백성 스스로 말씀을 찾은 것입니다. 2절 3절입니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에스라는 아침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읽었는데, 백성들이 그 긴 시간 동안 서서 귀 기울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백성들이 얼마나 말씀을 사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벽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되는 영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수문 앞 광장은 성전 북쪽에 있는 큰 공터로, 모든 백성이 모이기에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또한 본문은 남녀노소가 모두 모였다고 강조합니다(2절). 이는 신명기 31장의 율법 낭독 규례를 따른 것으로, “이스라엘 온 회중 곧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와 네 성문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들에게 들려 알게 하라.”는 것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수와 같습니다. 사람에게 물은 생명입니다. 물이 없으면 어떤 생명도 어떤 나라도 발전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물은 중요합니다. /
어느 나라에서 심각한 가뭄이 몇 달째 이어졌습니다. 강도 마르고, 우물도 바닥나며 사람들은 점점 기운을 잃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깊은 산속에서 샘물이 솟는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샘물은 누구든 와서 마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신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물동이를 들고 산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샘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고, 그 물을 마신 사람마다 생명을 되찾았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성벽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모하여 모두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영혼을 살리는 생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한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위한 양식이며 생명수 인 것입니다.
성경 예화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마르다는 집안일로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자신의 동생 마리아에게 바쁜 언니를 돕게 하라고 말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2)
마르다는 주님을 사랑했지만 분주함에 시선을 빼앗겼고, 마리아는 다른 일을 제쳐두고 예수님 앞에 앉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봉사와 섬김보다 먼저 그분의 말씀 앞에 앉는 자리를 택하길 원하십니다. 그 시간 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참된 복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벽보다, 집보다, 자기 일보다 말씀을 먼저 택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일 아침마다 우리가 모이는 이유는 바로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의 힘과 생명력은 건물이나 숫자에 있지 않고,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적용
여러분, 우리가 주일마다 예배당에 모이는 것은 단순히 모이는 행사가 아닙니다. 백성이 “한 사람 같이” 모였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이는 것입니다. 건강이 불편해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이 자리에 오는 이유는 단 하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 앞에 모이는 교회 공동체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모이는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말씀의 은혜를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둘째, 말씀을 사모하는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반응합니다. 5절 6절입니다.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강해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5절)
에스라가 성경 두루마리를 높이 펼 때 모든 백성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유대 전통에서 율법서를 읽을 때 일어서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에스라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았기에 자연스럽게 일어났습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가 예배 때 말씀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같습니다. 설교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 경건의 태도입니다.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6절)
백성들은 에스라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함께 “아멘,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아멘”은 ‘그렇습니다, 진실합니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담은 고백입니다. 또한 손을 들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예배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적용:
우리가 예배에서 드리는 찬양, 기도, 설교 반응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입니다. 진짜 경외심은 마음과 행동 모두에서 드러납니다. 9절입니다.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9절)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울었습니다. 단순히 감정이 북받쳐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죄와 부족함을 말씀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우리의 내면을 비추고, 우리의 잘못과 부족함을 보여줍니다.
레위 사람들은 백성들에게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위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정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으로 이끄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진짜 말씀의 역사는 우리의 마음을 찔러 죄를 깨닫게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의 은혜로 인도합니다. 말씀 앞에 눈물 흘리는 것은 은혜의 시작입니다.
성경 예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지 사흘째 되던 날,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큰 절망과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분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는데…”라는 말처럼, 그들의 기대와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게다가 여자들이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해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와 함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근심을 물으시며,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부터 시작해 성경에 기록된 자기 자신에 관한 말씀을 자세히 풀어주셨습니다(눅 24:27).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이야기하신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선지자들의 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들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평범한 나그네로 보였지만, 그분의 말씀에는 권능과 생명이 있었고, 절망으로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였습니다. 마을에 가까이 왔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강권하여 함께 유하자고 청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떼어 주실 때 그들의 눈이 열려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님은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제야 두 제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말씀을 깨달으면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깨달음이 없는 말씀 읽기는 밥을 씹지 않고 삼키는 것과 같아서 소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말씀의 뜻을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모두 죄인이고 모두 은혜가 필요합니다. 백성들이 울며 회개했듯, 우리도 말씀 앞에 설 때 눈물과 감사가 함께 나와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사모하는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쁨을 주고 삶을 변화시킴을 믿습니다. 10절입니다.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강해
말씀을 들은 백성은 울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와 연약함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속을 꿰뚫고 죄를 드러내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울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법은 단지 죄를 드러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의 길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찌르고 책망하지만, 그 목적은 우리를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죄를 회개한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죄가 드러난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눈물은 기쁨으로 변하고 절망은 소망으로 바뀝니다. 말씀은 이렇게 우리를 깨뜨리지만 동시에 우리를 세우고, 우리에게 참된 힘과 기쁨을 줍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말씀을 듣고 울며 회개한 뒤, 서로 음식을 나누고 위로하며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우리를 책망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기쁨과 감사의 공동체로 세우는 능력입니다.
예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 성경은 매우 귀했습니다. 그래서 평신도와 선교사들은 손으로 성경을 필사해 나누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작은 마을 교인들은 밤마다 등잔불 아래서 한 글자씩 정성껏 필사하며 말씀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 필사본을 읽고 깨달은 사람들의 삶이 변했고, 교회가 새로 세워지며 마을 전체가 말씀의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은 한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며, 나라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 예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지만,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깊은 죄책감과 수치심에 빠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베드로는 제자로서의 사명을 잃은 것 같아 다시 고기잡이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숫가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불가에 앉아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질문을 세 번 반복하심으로 베드로가 세 번 부인했던 죄책감을 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책망하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으로 다시 사명을 주시며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깨닫고 돌아오는 자를 책망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회복과 새로운 사명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죄책감 속에 묶어두지 않고, 회개와 은혜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느헤미야 8장에서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울었던 것처럼, 우리는 말씀 앞에서 우리의 죄와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말씀은 단지 우리를 책망하고 죄책감 속에 묶어두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 앞에 섰을 때, 예수님의 사랑은 그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덮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책망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 하시며 다시 사명으로 부르셨습니다. 죄로 무너진 베드로는 주님의 은혜로 회복되고 기쁨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회개와 은혜, 회복의 길을 보여주는 통로입니다. 말씀을 붙잡으면, 눈물과 회개의 순간 뒤에 기쁨과 평안이 찾아옵니다. 죄책감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새롭게 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말씀은 우리 마음을 찔러 깨우지만, 결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은 베드로를 품으신 예수님처럼, 우리를 죄책감에서 건져내어 사랑과 회복, 기쁨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오늘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말씀 앞에 서서 눈물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말씀의 은혜 안에서 새 힘과 기쁨을 얻는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울며 회개한 후, 기쁨으로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드러내지만, 그 말씀은 또한 우리를 일으키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시절의 한 목사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일제가 한국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평양 산정현교회를 담임하던 주기철 목사님은 끝까지 거부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서 그는 심한 고문과 추위 속에서도 오직 성경만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말씀을 읽으며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몸은 쇠사슬에 묶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매이지 않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도 말씀을 붙잡았고, 그 말씀의 능력이 그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주 목사님의 순교 신앙은 많은 성도들에게 도전과 소망을 주었고, 교회가 다시 복음 위에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새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도 그랬고,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도 그랬습니다. 세상의 소식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회복시키고 기쁨을 주십니다.
그러니 이번 한 주간, 말씀을 사모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말씀을 가까이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과 자녀를 세우시고, 교회를 회복시키시며, 이 땅에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여호와로 인한 기쁨이 우리의 힘이 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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