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2장 1-5절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
어느 마을에 두 사람이 집을 지었습니다. 한 사람은 바람도 적고 풍경도 좋은 언덕 위에 보기 좋은 집을 지었고, 다른 사람은 돌과 바위로 가득한 평지에 조금은 투박한 집을 지었습니다.
언덕 위의 집은 외관도 좋고 사람들 칭찬도 받았지만, 기초를 단단히 세우지 않았습니다. 반면 돌밭에 지은 집은 시간이 걸려도 기초를 단단히 다져서 세운 집이었습니다.
몇 달 뒤, 큰 폭우가 마을을 덮쳤습니다. 언덕 위의 그 아름다운 집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돌 위에 세운 집은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서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마을 어른은 말했습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기초가 없으면 공중누각이 되는 법입니다.”
‘공중누각’이란 말은 공중에 떠 있는 누각, 즉 기초 없이 허공에 세운 집이라는 뜻입니다. 겉은 그럴싸해도 실제로는 아무 힘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말이나 세상의 지혜, 감동적인 문장들로만 세워진 믿음은 공중누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하심과 능력 위에 세워진 믿음은 비바람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의 집과 같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전한 귀한 고백입니다. 그는 사람의 지혜로 말하지 않았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는 힘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과 능력입니다. 오늘 이 시간 성령의 능력에 대해 세 가지 질문과 답변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전해야 합니다. 2절입니다.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에도 능했고, 말도 잘 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오직 예수님,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만 전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인간의 철학이나 좋은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신 예수님의 은혜로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어떻게 하면 죄를 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죽은 뒤에 천국에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산에 들어가 수도를 하고, 어떤 사람은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똑똑한 철학자들의 말이나 책에서 구원의 길을 찾으려고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죄를 스스로 씻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 앞에서 매우 무겁고, 그 죄값은 죽음, 즉 피 흘림으로 밖에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입니다.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아이가 유리잔을 깨뜨렸습니다. 엄마는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지만, 깨진 유리 값은 누군가가 대신 치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괜찮다”라고만 하실 수 없습니다. 그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누군가가 갚아야 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치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지혜는 왜 구원의 길이 될 수 없을까요? 사람의 말이나 철학은 듣기에 좋고 머리에 남을 수는 있어도, 죄를 없애거나 생명을 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말은 우리를 위로하거나 잠시 기분 좋게 만들 수는 있어도,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고 천국으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분이 실제로 피 흘리셨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머리로 이해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사람이 만든 말이나 지혜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누가 잘 말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가입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 사랑이 지금도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말씀을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를 들면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 겠다”는 베드로의 고백은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처음 농사를 짓는 여러분에게 어떤 사람이 와서 농사 짓는 방법을 알려주면 그 방법을 기억하고 그 방법대로 일을 할 것입니다. 말씀을 의지한다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말씀을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님을 붙잡고 무슨 일을 하든 예수님과 동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음을 확실히 깨달으시고 오직 예수만 외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2. 우리의 연약함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3절입니다.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바울도 약했습니다. 떨림과 두려움 가운데 복음을 전했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연세가 들고 몸이 약해지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져도,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연세 많으신 한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손도 떨리고, 허리도 굽고, 귀도 잘 안 들리셨지만, 매일 아침이면 늘 하시던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작은 방에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켜는 일이었습니다. 손이 떨려서 스위치를 바로 못 누를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깜빡하고 지나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등은, 그 손이 얼마나 힘이 있느냐를 보지 않고, 그 손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언제나 밝게 불을 밝혔습니다. 이 모습을 본 손자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왜 그렇게 꼭 아침마다 전등을 켜신가요?”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작은 스위치를 누르는 것뿐이야. 나머지는 전기가 하는 거지. 마찬가지로, 내가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건 작고 흔들리는 일이지만,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단다.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시기에 가능한 일이란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손이 떨리고 기억이 흐려져도,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찬양할 때, 하나님은 그 작은 믿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바울도 “약하고 두려워하고 떨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큰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강할 때보다 오히려 약할 때 더 가까이 오십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여러분, 몸은 약해지고, 목소리도 작아지고, 기억도 흐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떨리는 손으로 기도해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 능력을 행하십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마시고, 오늘도 그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을 기대하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3. 믿음의 기초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입니다. 4-5절입니다.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목사님의 말솜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건물이나 프로그램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이유는 사람의 말이 좋아서도 아니고, 목사님의 설교가 재밌어서도 아니고, 건물이 크고 시설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만져 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해주시고, 말씀이 귀에 들리게 해주시고, 기도할 수 있는 힘도 주시는 겁니다.
집을 지을 때 제일 중요한 건 뭐겠습니까?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기초와 기둥이 제일 중요합니다. 겉은 예쁘게 칠하고 꾸며도, 기초가 부실하면 비바람이 오면 금방 무너집니다.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말이 아무리 잘 들리고, 교회 프로그램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것이 믿음의 기초가 되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믿음은 성령님의 능력, 곧 우리 마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뿌리내릴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로만 맛있다고 하는 음식보다, 진짜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국밥 한 그릇이 더 귀합니다.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보기 좋은 말보다, 성령님이 우리 속을 채워주시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설교를 듣고 나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나고, 죄가 생각나고, 기도하고 싶어지는 것은 성령님께서 그 말씀 속에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기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솜씨도 아니고, 교회의 크기도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살아 계신 성령님의 능력에 뿌리내릴 때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주여,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제 믿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기도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좀 더 똑똑했더라면", "내가 좀 더 건강했더라면", "내가 좀 젊었더라면, 하나님 일을 더 잘했을 텐데…"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강할 때보다, 약할 때 더 크게 역사하십니다.
예전에 수동 펌프로 물을 퍼올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펌프는 아무리 세게 눌러도 그냥은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꼭 작은 ‘마중물’ 한 바가지를 먼저 부어야 지하 깊은 곳에 있는 풍부한 물이 콸콸 나옵니다.
그 작은 마중물이 바로 우리의 연약한 믿음, 떨리는 기도, 조용한 찬양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지만 성령님께 그것을 올려 드리면, 하늘의 능력이 우리의 삶 속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낮에는 별이 보이지 않지만, 어두운 밤이 되면 별이 더 선명히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이 어두울수록, 약할수록, 성령님의 위로와 능력이 더 밝게 드러납니다.
그러니 꼭 기억하십시오. 예수님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내가 건강해서가 아니라, 성령님이 도와주시기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믿음을 지탱합니다.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며 다시 성령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 가운데 능력으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이 능력을 믿고 신뢰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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