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1장 1-17절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1. 서론 – 인사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편지를 쓸 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시작합니다.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며 이렇게 말합니다: 3절입니다.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진짜로 그들 삶 가운데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축복의 말입니다.
바울은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말로 전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만날 때 복을 빌어주는 말을 습관처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 많이 받으세요”
“오늘도 주님 안에서 평안하세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이런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잠언 18장 21절입니다.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도 이 바울의 마음을 품고, 우리 서로에게 말해봅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 말이 여러분의 마음을 살리고,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회복시키는 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론 1 –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바울은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냥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의 자격과 상관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가 똑같이 누리는 은혜와 성도만 누리는 특별 은혜가 있습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누리는 은혜의 대표적인 예가 햇빛입니다. 요즘 날이 더워서 폭염에 시달리는데 이게 무슨 은혜란 말인가 하고 의아해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나 짐승 그리고 식물은 해가 비추지 않으면 제대로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일정양의 해가 비추어 주어야 벼가 자라고 배추가 자라고 과일이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를 오랫동안 보지 못하면 여러 질병에 걸립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해를 비춰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악인이나, 의인이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성도들만 받는 특별 은총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도 성도는 아무 공로가 없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공을 세워야만 무엇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인심이 그렇습니다. 세상은 내가 무슨 공을 세워야 상도 주고 훈장도 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내가 어떤 공을 세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성경 예화: 다메섹 도상의 바울
바울이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사람이었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죽이도록 선동하던 자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 예루살렘에서 한참 떨어진 다메섹까지 잡으러 가던 사람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을 예수님께서 다메섹 길에서 만나 주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큰 빛이 임하였지만 음성은 바울만 듣고 다른 사람들은 빛만 보았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 바울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눈이 멀었습니다. 눈이 멀고 다시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통해 눈을 뜬 그 후에야 주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은혜는 우리가 착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그냥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도 오늘 그 은혜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이 선물을 항상 마음에 품으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감사의 고백이 풍성할 때 하나님이 더 많은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소망합니다.
3. 본론 2 – 평강은 예수 안에 있을 때 누리는 마음의 쉼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돈이 있어도, 건강이 있어도, 모든 일이 이루어져도, 마음에 평안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은 환경을 뛰어넘는 평강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평안은 보통 환경이 좋아야 생깁니다. 예를 들면, 통장에 돈이 많을 때, 몸이 건강할 때, 자식이 잘될 때, 일이 잘 풀릴 때입니다. 이런 조건이 맞아야 마음이 편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주는 평안은 아주 쉽게 깨집니다. 병이 생기거나, 돈이 떨어지거나, 관계가 무너지면 마음의 평안도 곧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은 외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내적인 안정과 쉼입니다. 그 평강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신다.” “지금은 어렵지만 하나님은 선하게 인도하신다.” 이런 믿음에서 오는 평강은 상황이 아무리 흔들려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해줍니다. 이런 믿음은 비록 내 환경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이겨낼 힘과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 예화: 풍랑 속의 예수님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고, 제자들은 생명을 잃을까 봐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은 배 뒤편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아셨고, 그 안에서 완전한 평강을 누리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바다야, 고요하라. 잠잠하라.”고 하자 풍랑은 잔잔해졌고, 제자들은 놀랍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그 자리에 진짜 평강이 있습니다. 그분은 폭풍도 잠잠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풍랑이 있지만,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마음의 평강이 찾아옵니다. 오늘도 그 평강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에 문제가 있고,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평강은 환경을 이깁니다. 세상의 평안은 없어질 수 있지만, 예수님의 평강은 풍랑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줍니다. 오늘도 그 예수님께 마음을 드리고, 그분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바울의 축복처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
4. 본론 3 – 은혜와 평강은 나누어질 때 더 커집니다. 10절입니다.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바울은 10절 이하에서 고린도 교회 안에 분쟁과 다툼이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 이유는 12절에서 설명합니다.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서로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하며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좋아하는 지도자만 따르고, 서로 누가 더 낫다고 다투며 교회 안에 갈등과 분열이 생긴 것입니다. 그들은 지도자 중심, 사람 중심으로 교회를 바라보았고 예수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와 평강을 받은 사람은 분열이 아니라 하나 됨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알게 됩니다. 내가 받은 구원도, 내가 받은 믿음도, 내가 누리는 평강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자랑할 것도, 나를 높일 이유도 없습니다. 그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겸손과 사랑이 생깁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다툼보다 화목을, 분열보다 하나 됨을 더 귀하게 여깁니다.
성경 예화: 아브라함과 롯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함께 살다가 양과 소가 많아지자 그들의 목자들끼리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먼저 나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13장 8-9절입니다.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기에 자기의 유익보다 화목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더 어른이고, 더 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라고 양보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약속을 믿었고, 그 믿음 안에서 화목을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서로에게 양보하고 사랑하며 교회 안에서 하나 되고 가정 안에서 하나 될 때 은혜와 평강은 흘러넘치게 됩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롯은 겉보기에 좋은 땅 소돔을 택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모든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다시 받습니다. 은혜를 따라 사는 자에게는 더 큰 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의 시작도 은혜요, 지금 살아가는 과정도 은혜요,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진심으로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 평강은 세상의 풍파가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을 주는 평강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그 은혜와 평강을 나만 누리는 데 그치지 말고, 우리 가정에, 교회에, 이웃에게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가정은 사랑으로 하나 되고, 우리의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우리는 진짜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인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그릇이고, 그 은혜 안에서 평강을 담아 나눌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평강을 가정에서 자녀에게, 배우자에게, 교회에서 성도 간에, 이웃과 친구에게 흘려보내는 복된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럴 때, 우리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화목으로 가득 찰 줄로 믿습니다. 그 은혜와 평강을 나누고 세우는 사람이 될 때, 우리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오늘 이 밤, 바울의 인사처럼 우리 서로에게 축복합시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가정과 일터와 삶 속에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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